70~80년대 민주노조운동 선봉에 선 원풍모방 126명의 삶과 투쟁
원풍모방노동조합은 1970년대 민주노조의 마지막 이름이었다. 1972년 민주노조로 거듭나 온갖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군부 출범 초기인 1982년 노조간부 8명이 구속되고 노조원 559명이 강제해고되면서 사실상 막을 내렸다.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자 형제였던 이들은 중학교, 심지어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는 어린 나이에 무거운 가장의 짐을 짊어지거나 남자 형제들의 학비를 충당키 위해 장시간 노동의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치열한 투쟁과 뼈저린 아픔을 통해 사회의식을 깨우치고 민주주의를 배우는 등 소중한 교훈도 얻었다. 교육과 독서, 토론으로 노동의 소중함을 깨닫고, 노동자의 정체성을 명확히 받아들여 깨어있는 시민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 결과 육체노동은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보람이 됐다. 의식의 변화가 이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행복과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1982년 9월 출근투쟁하는 원풍모방 노동자들을 연행하는 경찰들(사진 = 학민사 제공) |
원풍노동자 출신들로 구성된 원풍동지회가 엮은 책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는 작고 부드러운 듯 보이나 힘차고 끈질긴 생명력의 강인함을 담은 증언록이다.
구술자는 원풍모방 해고 노동자 126명. 이들은 여고 시절이 없던 젊은 날 이야기에서 출발해 가난의 절망을 어떻게 희망으로 바꾸었는지, 저학력의 열등의식에 어떻게 삶의 지혜를 채워갔는지 진솔하게 들려준다.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어야 했고, 어린 나이에 가장의 짐을 져야 했다. 하지만 청춘은 국가폭력에 무참히 유린당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산업역군'에서 '불순분자'로 내몰렸다.
이들의 증언은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다. 원풍 이전과 이후의 개별적 삶은 조금씩 달랐으나 난생 처음 인간 대접을 받았던, 짧았지만 행복했던 원풍 시절의 공동체적 삶은 대동소이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 60 전후의 나이가 된 이들은 이처럼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달랐던 그 시절의 삶을 차례로 회고한다. 짓밟혔지만 결코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선 이야기는 시대를 뛰어넘어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번 증언록에는 방용석, 이규현, 박칠성 씨 등 남성 노조원 9명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1982년 해고됐던 원풍모방 노동자들이 2005년 4월 청주 산업단지에서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원풍동지회 황선금 회장은 머리말에서 "사표를 내지 않으면 연행해 구속하겠다는 협박 속에 우리는 기쁨과 행복, 희망의 근거였던 원풍모방에서 쫓겨났고, '원풍민주노조 10년'의 깃발은 군사독재의 군홧발에 찢겨버렸다"면서 "2007년, 정부로부터 우리들의 투쟁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으며 '빨갱이'의 굴레에서 벗어나 명예회복이 됐고, 그 명예회복 인증서를 받던 날 우리 모두는 펑펑 울었다"고 회고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선 이사장도 발간사를 통해 "1972년, 원풍모방의 전신인 한국모방에서 시작된 민주노조 건설의 빛나는 승리는 단순히 70년대를 대표하는 노동운동의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한다.
"원풍노조는 70년대 민주노조 중 가장 오래 싸워, 가장 많은 해고자가 나온 기록을 가지고 있다. 유신독재와 긴급조치라는 엄혹한 시대 조건 속에서 원풍노조가 이뤘던 성과들은 지금 여기에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으로 이어지고 있다. 책에 실린 원풍노조 126명의 기억과 기록은 잘 알려진 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민초이자 현장 노동자들의 삶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소중하다.""
학민사. 1008쪽. 4만8천원.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 |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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