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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김성회의 3세대 소통병법’] “고기 굽기 싫어” 족발 회식하는 밀레니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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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일러스트 : 강유나


회식, 당신은 퍼뜩 어떤 메뉴를 떠올리는가. 기성세대에게는 삼겹살이지만 요즘 뜨는 메뉴는 족발보쌈이다. 그 이유는? 건강, 기호 변화 등의 이유 때문이 아니다. 누가 고기 구울 것인가 신경전을 벌이기 싫어서다.

X세대 A과장은 매번 회식 때면 자신이 ‘고기 사역’ 역할을 하다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 욱했다. 참다 못해 밀레니얼 직원에게 “오늘은 ○○씨가 고기 좀 구워보지” 하고 말을 던졌다 본전도 못 찾았다. 그 직원이 “저, 집에서 고기 구워본 적 없는데요”라고 대답하더라는 것. 이후 그는 불가피한 경우 아니면 부서 회식 메뉴로 삼겹살을 피하게 됐다.

‘요즘 것들은’은 고대사회부터 반복돼 나온 기성세대의 불만이다. 최근에는 ‘요즘 분들은’으로 후배 상전이 더 무섭다는 이야기도 만만찮다. 과연 기성세대가 버릇없다고 말하는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지적질은 타당한 것일까.

예절이 없어, 눈치가 없어, 개념이 없어, 철이 없어, 정의감이 없어…. 기성세대가 밀레니얼을 구별해 말할 때 지적하는 5무(無) 세트다. 한동안 SNS에서 자신의 얼굴 사진을 동안(童顔)으로 올리는 앱이 중년 사이에 유행한 적이 있다.

반대로 영미 서구권에서는 밀레니얼 사이에 ‘베이비부머인 척하는 그룹(A Group where we all pretend to be boomers)’ 페이스북 커뮤니티가 화제라고 한다. 2019년 6월 말 만들어진 그룹으로 2030 밀레니얼 세대가 부모인 5070 베이비붐 세대인 척 꼰대스러운 게시물과 사진을 올리는 그룹이다. 기성세대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게으르고 이기적’이란 낙인을 씌운 데 대한 반작용이 커뮤니티 결성 취지라나.

꼴통과 꼰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외계인의 말, 말속에 담긴 마음도 통역 가능할 것인가. 세대 차이 통역기를 돌려 속마음부터 들어보자.

▶“요즘 애들은 개념이 없어”

민낯으로 지하철에 탑승한 20대 여성, 내릴 때는 풀 메이크업을 한 전혀 다른 여성으로 변신한다.

기성세대 : 아, 요즘 애들은…. 지하철은 공공의 공간인데, 자기 방인 줄 아나? 어떻게 같이 있는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할 수 있을까….

밀레니얼 : 지하철 화장이 왜 문제예요? 조용히 내 할 일 하는데요. 출근하면서 단 몇 분이라도 더 자려면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것이 시(時)테크예요. 내가 뭐 딱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 것 있나요. 지하철에서 고래고래 큰 소리로 떠드는 아저씨들보다 낫지요.

포인트 : 함께 살아가는 규율에는 공(公)과 공(共)이 함께 작동한다. 둘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하느냐가 세대 간 갈린다. 기성세대가 퍼블릭(public)의 공중(公)을 중시한다면, 이들은 커먼(common)의 공유(共)를 앞세운다. 퍼블릭을 강조하면 공개되는 것을 중시하지만, 커먼을 중시하면 함께 사용하는 것이 중시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영역이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대는 예절이 없어”

20대 청년 앞에 나이 든 노인이 서 있다. 노인은 불끈 화난 표정을 짓다 마침내 못 참고 자리를 비키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기성세대 : 요즘 것들은…. 자는 척하면 양심에 찔린다는 표시라도 나지. 나이 든 사람이 앞에 있는데 눈 똑바로 뜨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니….

밀레니얼 : 나이 든 사람이라고 다 약하고, 젊은이라고 다 힘이 넘치란 법이 어디 있나요. 마치 자기 자리 뺏은 걸 돌려받는 것처럼 당연시하거나 내 자리 내놓으라며 강요하는 어른들 보면 화가 나요.

포인트 : 전통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양보는 장유유서, 나이 듦 그 자체에 대한 권위 존중이었다면 지금은 마이너리티에 대한 존중으로 이동했다. 밀레니얼은 세계 각국의 불쌍하고 부당한 일에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로 반응한다. 동물 보호 등에 대해 민감하게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성세대나 밀레니얼이나 약한 자에 대한 공감 감수성은 같다. 다만 밀레니얼은 ‘노인=약자’란 등식에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약자에게는 양보하지만 노인이라고 무조건 양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양보는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회식 고기 사역 예절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위계에 따라 누가 ~해야 한다’는 당위를 예절이라 규정하는 것에 문제 제기한다.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기보다는 급한 사람부터 먹으면 된다는 주의다.

▶“요즘 세대는 겁부터 내?”

요즘 중소기업 B사장은 평소에 능력 있다고 눈여겨봐온 C를 파격 승진시켜 팀장으로 발령 냈다. 당연히 감사해할 줄 알았는데 승진을 사양한다는 장문의 메일을 받았다.

사장 :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데 해보지도 않고 겁내? 도전하는 것이 용기야.

밀레니얼 팀장 후보자 : 실속이 제일이지요. 승진해봤자 월급은 쥐꼬리만큼만 오르고 할 일과 신경 쓸 일은 태산같이 많아지는데…. 승진하고 싶지 않아요.

포인트 : 원인은 두 가지다. 예전의 리더는 권한이 책임보다 많았다. 요즘의 리더는 반대다. 그 때문에 자리를 부담스러워하는 구성원도 늘고 있다. 예전에는 선공후사(先公後私)지만 요즘은 선사후공이다.

무조건 도전의식이 없다고 탓하기보다 발휘할 환경 세팅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경력 트랙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요컨대 전문가 트랙과 관리자 트랙을 함께 두는 것이다.

업무 역량이 뛰어나다고 해서 모두 관리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 것이 요즘 밀레니얼의 추세다. 이들은 불안한 노동시장에서 자기 콘텐츠를 가지는 것만이 살길이란 절박한 의식을 갖는다. 프로페셔널 지향이 강하고 제너럴리스트인 관리직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높을 뿐이다. 도전의식을 발휘하는 곳이 다르다.

▶“요즘 친구들은 사회의식이 없어”

기성세대가 밀레니얼에게 하는 단골 레퍼토리다. 국가관이 없다거나 사회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질이다. “왜 분노하지 않는가” “당신의 선배들은 머리가 굳어 있어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젊지 않습니까.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한 번만 의문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등이 그런 예다. 언론은 매 선거 때 20대가 보수냐 아니냐를 놓고 논전을 벌인다.

기성세대 : 왜 불의에 항거하지 않는 거야? 청년이라면 청년답게 부딪쳐봐야지.

밀레니얼 : 불의가 아니라 당신 편을 들어달라는 이야기 아닌가요? 우리는 이념보다 이슈에 반응해요. 투표로 뜻을 보이라고 하지만 개념 있는 소비로 뜻을 표해요.

포인트 : 386세대가 청년기를 보낸 1980년대는 우리나라의 고성장기다. 또 인구의 20%만이 대학에 진학, 대학생이 엘리트로 이해되던 때다. 지금은 인구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데다 저성장사회다. 이들은 늘 미래가 불안하다. 게다가 이들은 기본적으로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이슈에 따라 그때그때 지향이 바뀐다. 서구 밀레니얼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젊은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는 밀레니얼 세대를 ‘결정장애 세대’라 칭하며 이렇게 고백했다.

“투표로 심판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개념 있는 소비를 통해 정치계에 압박을 가한다. 국회가 아니라 신용카드 회사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메시지를 정치계에 전달한다. 내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고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를 찍느냐보다 무엇을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상품을 구매하고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어떤 것에 열광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사회 변화와 정치 쇄신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매경이코노미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8호 (2019.10.09~2019.10.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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