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아스 슈뢰더 아빠스 "한국 유물 보존한 데 대해 자부심"
예레미아스 슈뢰더 아빠스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외국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인질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게 아니라 문화대사로 봐야 합니다. 유물이 각국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인 셈이죠. 문화재를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한국을 찾은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연합회 총재 예레미아스 슈뢰더 아빠스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해외 문화재에 대한 인식 전환을 요구했다. 문화재 환수보다 보존과 실태 파악, 활용을 선행해야 함을 강조한 셈이다.
오틸리엔연합회는 한국 문화재 반환에 가장 적극적인 기관으로 꼽힌다. 겸재 정선 화첩을 2005년 영구 대여 형태로 돌려줬고, 안드레 에카르트 신부가 한 세기 전에 수집한 식물 표본을 국립수목원에 기증했다. 국내 최초 양봉 교재인 '양봉교지'(養蜂要誌)와 조선 후기 보병이 입은 갑옷인 면피갑(綿皮甲)도 한국에 보냈다.
슈뢰더 아빠스는 겸재 정선 화첩에 대해 "개인 금고에 있었는데, 그림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 잘 몰랐다"며 "돈을 줄 테니 팔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럴 마음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구 대여 형식의 반환이 한국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며 "한국 역사학자가 영혼의 일부가 돌아왔다고 평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폭력, 사기, 절도 등 불법 행위로 취득한 문화재는 원칙적으로 반드시 원소장처에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문화재가 여러 차례 유통되면 최초 소장자를 가려내기 어렵고, 불법성을 판정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화재 환수는 국가 간에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독일에서는 바이에른이 취득한 프랑켄 유물로 분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화재를 돌려준다고 해서 역사를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죠. 이를 바탕으로 상호 도울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슈뢰더 아빠스는 오틸리엔수도원이 한국에 문화재를 양도한 행위를 설명하면서 영어 명사 '레스티튜션'(restitution)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단어는 분실물이나 절도품의 반환을 뜻한다.
그는 "레스티튜션에는 과거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다는 뉘앙스가 있지만, 우리는 한국 문화재를 보존한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며 "오틸리엔연합회에 있는 한국 문화재는 선교사들이 합법적 방법으로 모은 물품"이라고 강조했다.
예레미아스 슈뢰더 아빠스(왼쪽)와 박현동 아빠스 |
슈뢰더 아빠스는 방한 기간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한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 소장 혁필화(가죽 붓으로 그린 그림) 5점의 보존처리 성과를 살피고,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100년 전 한국 혼례복의 보존처리 과정을 봤다.
혁필화는 홍재만과 송염조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서화가 작품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 사업을 통해 깨끗해지고 형태가 족자로 바뀌었다.
그는 "혁필화 중 일부는 승려가 화가에게 부탁해 제작했다고 하는데, 종교와 예술이 서로를 풍성하게 해준 예"라며 "우리도 문화재를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말고, 대화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슈뢰더 아빠스는 인터뷰 도중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차례 표시했다. 그는 재단과 함께 소장품 도록을 발간하고, 선교박물관 오디오 가이드 개발과 조명 개선 작업도 논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인터뷰에 동석한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는 "100년 전쯤 한국에 온 독일 수도사들은 일제에 의해 우리 문화와 언어가 말살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생활용품을 모으고 사진을 남겼다"며 "오틸리엔연합회가 한국에 준 문화재들이 좋은 선례로 자리매김하고, 독일과 한국 간 협력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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