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6 (일)

[매경춘추] 마린보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어릴 적 나는 여느 꼬마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오토바이, 비행기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도 내가 더 좋아했던 것이 있다면 바로 큰 외항선이다. 지금도 나는 선박을 보면 각각의 선박이 마치 저마다의 영혼과 성격을 갖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스위스에서 자란 내가 선박에 매혹된다고 하면 사람들은 종종 뜻밖이라는 눈길을 보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스위스 국기를 내걸고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상선들이 있다는 사실은 스위스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물다. 1941년 4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위스 국민에게 기본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스위스 상선이 지어졌는데, 전쟁이 끝난 뒤 오늘날까지 약 30척이 남아 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떤 직업을 탐색할지 고민하던 나는 해양통신사 직업교육과정을 선택했다. 몇 년의 지상직을 거쳐 배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나는 국제적십자위원회에서 일하기로 결정했고, 앙골라와 레바논에서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모스부호를 사용한 단파라디오를 통해 선박들이 주로 교신했던 시절이었고,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적십자위원회 본부와 통신 인프라스트럭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파견 지역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교신 방법 역시 단파라디오였다. 모스부호를 익히는 것은 마치 처음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아서 한번 체득하기만 하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기에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모스부호를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스위스무역투자청 한국사무소에는 해양 산업군의 스위스 고객사가 꽤 많다. 실제로 내륙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에는 많은 세계적인 해양 기술 및 대형 선박 관련 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는데, 그중에는 LNG, 고효율 에너지 추진 기술, 친환경 디젤엔진 시스템 분야에서 선도를 달리고 있는 기업도 있다.

한국에 선박을 발주하는 스위스 기업도 많기 때문에 해양 산업에서 한국과 스위스는 연이 깊다고 할 수 있겠다. 10월 22일에서 25일까지 부산에서는 조선해양전시회인 코마린(KORMARINE)이 개최된다. 스위스 홍보관도 세울 예정인데, 이곳에서 많은 스위스 기업을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배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방문했으면 한다.

[로제 츠빈덴 스위스 무역투자청 한국사무소 대표]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