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며느리 유인숙씨, 천경자와의 20여년 회고한 '미완의 환상여행' 펴내
2015년 세상을 떠난 천경자 |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어머니는 젊었을 때 (중략) 혼자 모든 가족을 돌봐야 했다. '저녁에 먹을 쌀을 살 것인가? 아니면 그림을 그릴 장미 꽃다발을 살 것인가?' 어머니는 고민하셨다. 결국엔 장미 꽃다발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화가 천경자(1924∼2015)가 큰며느리 유인숙 씨에게 전한 이야기 한 토막이다. 매 순간 그림 그리는 일을 최우선한 천경자 면면을 보여준다.
유씨는 1979년 11월 천경자 맏아들과 결혼했다. 그는 1998년 가을 천경자가 뉴욕의 맏딸 이혜선씨 집으로 떠나기 전까지 지근거리서 보살폈다. 신간 '미완의 환상여행'(이봄 펴냄)은 그 20여년간을 복기하면서 예술가 천경자 일상을 생생하게 전한다.
한국전쟁과 지독한 가난, 어긋난 결혼과 사랑, 여동생 죽음 등을 경험한 천경자는 꿈과 한을 몽환적인 여인과 이국적인 풍경에 투영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힘들 때마다 그림을 그리는 데 더 집중했다. 며느리 유씨는 서교동 양옥집 2층에 홀로 머물면서 하루 네댓시간씩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그리던 어머니, 외출에서 돌아오면 그림들을 향해 "잘 있었는가"라며 인사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전한다.
그렇게 온전히 그림에 몰두한 만큼 천경자는 가족에게도 예민하고 고독한 작가였다. "어머니는 평생 고독하셨다. (중략) 내가 옆에서 본 어머니는 고독을 힘겨워하셨지만 한편으로는 고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신 것 같다. (중략)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운명을 어머니는 당당하게 받아들이면서 사셨다."
2017년 케이옥션 경매에서 7억원에 낙찰된 천경자 1982년작 '길례언니' |
처음에는 어려웠을 고부 사이는 시간이 갈수록 도타워졌다. 유씨는 결혼한 이듬해 커피를 갖다 드리고 나오다 자연스럽게 모델이 됐다. '황금의 비'를 시작으로 '여인상' '여인의 시 1, 2' '등꽃 화관을 쓴 여인' '환상여행' 등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한 유씨는 누드모델 역할도 피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은 어머니는 "아가, 나 외로워"라며 며느리에게 종종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씨는 천경자 작품이 맞냐 아니냐를 두고 수십년간 끌어온 '미인도' 사건을 두고도 "그 '미인도'는 위작이 분명하다"고 다시금 밝혔다. '미인도'를 두고 "여자의 눈빛이 희미하고 머리의 꽃도 조잡하다"고 말해도 경청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당시 어머니는 계속 담배만 피웠다.
"그렇게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시는데도 몇몇 사람들은 '미인도'가 위작이 아닌 진짜처럼, 그러니까 어머니가 그리신 그림처럼 만들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책 뒷부분에는 미술사학자 이주은의 천경자 예술세계 해설과 천경자 연보가 실렸다. 272쪽. 2만2천 원.
[교보문고 제공] |
aira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