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2 (수)

[생생확대경] 뉴스의 향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워터게이트 특종'의 전설,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

"언론의 위기 걱정 말라. 인내심 가지고 공격적인 기사 써라"

"독자는 좋은 기사의 향과 냄새 맡을 수 있어"

이데일리

워터게이트 특종을 보도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 그는 지난달 26일 한국을 찾았다.(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1974년 초. 리처드 밀허스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기 6개월 전이었다.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정치권은 들썩이고 있었다. 일요일에도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사무실에서 관련 자료를 뒤적거렸다.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저는 마서 미첼이라고 해요.” 마서 미첼은 법무장관인 존 미첼의 부인이었다. 미첼 장관은 닉슨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 나쁜 놈이 나를 떠났어요.” 미첼 부인은 술에 취한듯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가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고, 여러 가지 서류들을 책상 위에 그대로 놓은 채 미첼 장관이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당신이 와서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지 봐주시면 어떨까요?”

우드워드 기자는 곧바로 뉴욕으로 향했다. 미첼 부인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그녀가 문을 열었다. 손에는 마티니가 들려 있었다. “술 한잔 하시겠어요?” 그녀가 물었다. 우드워드 기자는 사양했다. 같이 술을 같이 마실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나쁜 놈의 서류가 저 책상 위에 있어요.” 책상에는 여러 메모와 편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중에는 대형 제약회사가 미첼 장관에게 10만달러의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내용이 담긴 편지가 놓여 있었다. 우드워드 기자는 서둘러 서류를 챙기고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워싱턴포스트는 미첼 장관의 뇌물 수수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달 26일 한국을 찾은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이 들려준 얘기다. 76세의 노(老)기자는 언론계의 전설이다. 그는 워터게이트 특종과 9.11테러 보도로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을 두 차례 받았다. 그는 물었다. “그 시절의 제가 너무 공격적이었나요? 도덕적이지 못했나요?”

우드워드 부편집인은 워터게이트 보도로 미국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지만, 그는 처음에 역적 취급을 받았다. 당시 닉슨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1972년 대선에서 압승한 닉슨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초반 지지율이 68%에 달했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던 터였다. 그의 워터게이트 보도는 한편으로 미국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처음 보도했을 때 사람들이 제 보도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어요. 너무 극단적인 관점에서 보도한 거라고 생각했죠.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은 게 맞느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진실을 덮었어야 했을까. 그는 겁먹지 않았다.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은 언론의 위기를 말한다. 기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가짜뉴스라고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기자들이 ‘기레기’ 소리를 듣는 시대다.

언론이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언론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수많은 보도는 이미 공해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기자는 왜 기사를 쓰는가. 어떤 기사를 써야하는가. 노기자는 이렇게 조언했다.

“제가 그동안 잘 해낸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변화에 너무 겁먹지 마세요. 인내심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기사를 쓰세요. 훌륭한 보도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독자들은 그 향과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