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대왕 영릉 청화백자 지석(1673년, 각 22.0×15.9×1.5cm). |
망자의 함자와 생일, 죽은 날과 자손 등의 인적사항을 새겨 봉분 앞에 묻는 돌을 옛말로 지석(誌石)이라 한다. 조선 제17대 왕 효종 영릉을 경기 여주로 옮기던 당대 지석은 기존과 다소 달랐다. 보통 지석은 널빤지처럼 커다란 돌인 판석(板石)을 사용하는데 이동 시에 백성들이 겪을 고통을 우려해 당시 지석은 도자기를 구워 제작하기로 결정됐다. 쉽게 말해 '조선 청화백자 지석'인 셈이다.
백성의 고통을 덜라는 어명 덕분에 시험판이 사전에 제작됐다. 당시 왕실 깊숙한 곳에서 보관됐던 청화백자 지석 시제품 3편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선왕실의 비석과 지석 탑본' 특별전을 8일부터 12월 21일까지 원내 장서각에서 연다고 밝혔다. "장서각이 소장 중인 556건 가운데 왕실이 제작한 최고 수준만을 모았다"고 연구원은 밝혔다.
청화백자 지석 외에는 대다수가 탑본이다. 탑본이란 먹으로 찍어내거나 글씨를 베껴쓴 것을 말한다. 비석과 지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모되거나 왕릉을 옮기며 옛 비석을 땅에 묻거나 비석을 깎아 글을 새기는 경우도 있기에 탑본이 원형(原型)이다. 후궁 정빈 이씨의 묘비를 제작하고자 영조가 직접 글을 쓰고 한 글자씩 오려 방안지에 배열한 '정빈 이씨 표격지'가 가장 대표적이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 영릉에 세운 표석을 비단에 새긴 '세종대왕 영릉비 탑본'도 문양과 글씨가 아름답다. 전시는 평일과 토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된다. 일요일은 휴관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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