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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이슈 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고령사회’ 적절한 호칭은?…세대 구분 짓는 언어, 포용적 언어로 바꾸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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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결혼한 정모(34)씨는 명절처럼 가족과 친지가 모이는 날이면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다. 전통적인 호칭이 있지만 ‘도련님’이나 ‘아가씨’, ‘처남’, ‘처제’처럼 배우자의 가족을 지나치게 존칭하거나 하대하는 느낌이 들어 마뜩잖게 여겨지기도 하다. 정씨는 “시간이 지나면 호칭이 익숙해지긴 하겠지만, 적절한 표현같지는 않다”며 “호칭이 가족간의 거리를 정립한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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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가 청자를 부를 때 쓰는 말을 ‘호칭’이라 부른다. 이런 호칭은 상대를 지칭하는 표현을 넘어 화자와 청자 사이의 관계나 태도를 나타낸다. 우리말에는 상대에 대한 예절을 담는 표현이 많은데, 호칭 역시 상대를 존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호칭이 때로는 세대 간·성별 간 장벽을 만들기도 한다. 소통을 위한 호칭이 관계의 거리를 만드는 셈이다. 최근에는 고령사회 도래에 따른 세대 갈등이나 성 평등 인식 확산 등의 영향으로 호칭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호칭, 관계의 맥락에 갇히면 확장 잠재력 줄어”

지난 8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는 한글날을 맞아 ‘시민 관점에서 보는 공공언어, 차별을 넘어 포용으로’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공공언어의 차별성을 짚어보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취지로 열렸는데, 오늘날 호칭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오갔다.

마상룡 탈근대철학연구회 공동대표와 정성현 세종국어문화원 연구위원은 ‘공공언어의 나이에 따른 차별어 문제-호칭 문제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시대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호칭이 소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집단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고, 남녀의 위상이 상하관계가 아닌 양성평등의 관계로 변화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변화의 과정 속에 호칭이 관계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의 존칭이 의사소통 과정에서의 메시지보다 상하관계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호칭에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성별, 지위 등이 포함되면, 관계가 그런 맥락에 갇혀 확장의 잠재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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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령사회에서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을 가진 세대 사이의 호칭은 장벽이 될 수도 한다. 마 대표와 정 연구위원은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노인들은 예전 노인들과 확실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며 “사회적으로 노인에 대한 기준과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호칭에 대해 논의를 활발하게 해야 될 때”라고 말했다. 다만 “단순히 호칭을 바꾼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개인 간의 특수한 관계를 반영하는 호칭은 사람마다 존중하는 방식이 다르며, 겉으로 드러난 표현보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나 신뢰의 정도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호칭의 함의를 정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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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우리말을 사용하는 출판사 움직씨의 대표인 노유다 작가는 호칭이 가르는 나이와 성별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작가는 “대부분의 소통이 호칭이나 존칭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 표현의 인상과 감각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며 “호칭 문제는 한국 사회의 나이주의, 성별 위계 및 이분법, 약자 혐오 등과 맞물려 새롭게 다뤄야 할 과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공언어로서의 한글이 달라지는 문화와 역사를 반영하지 않고 보수화된다면 도래할 시대에 차별적이고 무용한 언어로 고착될 수 있다”며 “나이 위계와 혐오, 성별 이분법을 넘어 호칭을 재구성하는 것은 세대 간 소통을 위한 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호칭어 개선해야’ 86.3%…세대 간 소통 위한 과제

이날 토론회에서 처럼 전통적 호칭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국립국어원이 2017년 전국 10∼60대 남녀 4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회적 소통을 위한 언어 실태 조사’에서 응답자의 86.3%가 ‘호칭어·지칭어를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상당수의 응답자가 현재의 호칭을 쓰는데 불편하거나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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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시민 관점에서 보는 공공언어, 차별을 넘어 포용으로’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다만 호칭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세대 간·성별 간 인식의 차이는 있었다. 일례로 ‘도련님’이나 ‘아가씨’, ‘처남’, ‘처제’ 등의 호칭에 대해 응답자의 65.8%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10∼40대와 비교했을 때 50∼60대의 개선 의식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또 남성의 개선 의식이 여성보다는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호칭 개선에 대한 일부 의견 차이는 있어도, 시대적 흐름을 고려할 때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기조를 고려한 듯 여성가족부는 가족 간의 새로운 호칭을 제안하기도 했다. 가령 배우자의 손아래 형제자매의 경우 이름에 ‘씨’를 붙여 부르자는 것이다. 또 아내 쪽의 할아버지나 할머니에 ‘외’자를 붙이는 대신 동네 이름을 붙여 ‘부산 할머니’ 등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소강춘 국립국어원장은 “차별적 공공언어는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과 품격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반드시 개선해야 할 문제”라며 “한글날을 맞아 온 백성이 언어생활을 편안하게 하길 바랐던 세종대왕의 뜻을 다시 한 번 새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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