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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취재파일] '살인의 추억'에 미소 짓는 살인마…'미국판 이춘재' 새뮤얼 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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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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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명 여성 죽였다"…美 최악 연쇄살인마의 자백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추억을 어렵게 회상하는 듯 종종 눈을 치켜뜨곤 했습니다. 뺨에 손가락을 대고 천천히 기억을 불러왔습니다. 수십 년 전 범행도 마치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말하듯이 키와 몸무게 그리고 인상착의를 담담하게 진술해나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범행 수법을 말하는 장면을 보는 건 너무나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잔혹한 수법을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만면에 엷은 미소까지 띠며 진술해나갔습니다. 그에게는 어떤 반성이나 자책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살인 자체를 즐기는, 말 그대로 사이코패스 살인마였습니다.

최근 미 연방 수사국 FBI가 美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마로 확인한 새뮤얼 리틀의 자백 동영상 이야기입니다. 93명의 여성을 죽였다고 자백했는데, 수사기관들이 실제로 확인한 사건이 50건이었습니다. 이로써 리틀은 미 역사상 가장 많이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마가 됐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FBI는 아직도 미확인 상태로 남은 희생자를 찾기 위해 단서가 부족한 희생자들에 대한 자백 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아는 사람은 제보를 달라는 설명이 덧붙여 있습니다.

● 화성 연쇄살인 용의자 이춘재와 놀랍도록 흡사한 검거 경위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로 떠오르는 데는 DNA 검사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무기징역이 선고돼 교도소 담장 밖으로 나갈 가망성이 사라진 상황에서 화성 사건의 증거가 나오자 이춘재도 결국 자신의 범죄를 털어놨습니다. 새뮤얼 리틀도 이와 비슷합니다. 리틀은 1970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35년 동안 미국 전역을 누비며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였습니다. 그랬던 리틀의 덜미를 잡은 건 살인이 아니라 마약 소지 혐의였습니다. 지난 2012년 켄터키에서 검거돼 캘리포니아로 이송됐는데, 거기서 살인 사건 3건의 DNA 흔적이 리틀의 것과 일치했습니다. 3건의 살인 사건에 대해 종신형이 선고되면서 결국 사회와 영원히 격리됐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어쩌면 그가 저지른 다른 살인 범죄 행각도 같이 묻힐 뻔했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그도 자신의 범죄를 모두 털어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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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사스 레인저스 프로파일러의 기지가 이끌어 낸 리틀의 자백

리틀의 자백 경위에 대해서 지난 주말 美 CBS 60 minutes(우리로 치면 그것이 알고 싶다와 유사한 프로그램입니다.)프로그램에서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어쩌면 세상에 드러나지 못할 수도 있었던 리틀의 범죄 행각은 뜻밖에 텍사스 주의 한 프로파일러 수사관의 기지 덕분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텍사스 주의 중대범죄 담당 수사기관) 소속의 제임스 홀랜드는 자신이 담당했던 데니스 브라더스라는 여성에 대한 살인 미제 사건을 수사하면서 당시 텍사스에 새뮤얼 리틀이 머물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1994년의 사건이라 DNA 검사같이 딱 떨어지는 증거도 없었고, 제대로 된 진술도 없었지만, 수사관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수감돼 있던 리틀을 만나기 위해 출장을 갔는데, 그는 리틀이 살인자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범죄자 마음의 문을 여는 게 특기였던 수사관 홀랜드는 그 자리에서 자백을 이끌어냈고 그의 진술은 놀랄 만큼 당시 상황과 일치했습니다. 리틀의 자백을 바깥에서 FBI와 법무부 직원들이 함께 들으며 당시 사건 기록과 사진을 열람하며 확인했는데, 상황이 놀랍도록 일치했습니다. 텍사스의 장기 미제 살인 사건이 해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텍사스는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사형을 집행하는 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미 무기징역이기는 하지만, 그가 계속 죄를 자백한다면 스스로 사형당하길 재촉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홀랜드는 더 있을지도 모르는 살인 피해자들의 진상을 규명하는 걸 택했습니다. 주 검사에게 청원해 리틀이 자백한 사건에 대해 사형을 면하게 해준다는 서면 약속을 받은 겁니다. 이때부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지난해 9월, 리틀을 아예 텍사스로 옮겨와 무려 48일 동안 연속으로 조사실에서 살인에 대한 자백을 받았습니다. 좁은 조사실에 단둘이 앉아 피자 한판과 닥터 페퍼를 놓고는 최대한 편한 분위기에서 억울하게 살해당한 여성들에 대한 기억을 불러냈던 겁니다. 이때만 무려 65건의 살인에 대한 추가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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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찍듯 기억하는 살인마의 능력…또 다른 단서가 된 초상화

홀랜드는 리틀이 남들과 다른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수십 년 전 일을 마치 사진 찍듯이 기억해냈던 겁니다. 1970년대 자신이 살해한 여성의 인상착의는 물론 키, 몸무게까지 진술해 낼 정도였습니다. 수사관 홀랜드는 "리틀의 진술에서 허튼소리는 하나도 없었다"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리틀은 그림 솜씨도 좋았습니다. 아예 피해 여성들의 그림을 그려보자는 권유에 하나하나 초상화로 그려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50여 명의 그림을 그려냈고, 지금도 피해 여성을 기억하며 초상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한 초상화를 지역 신문에 냈더니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자신의 어머니라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이 여성은 실제 인물인 사라 브라운으로 확인됐습니다. 피해 여성과 그림은 놀랍도록 닮았고, 결국 영원히 미제로 묻힐뻔한 사건의 진범이 확인된 겁니다. 리틀은 최근까지도 재판을 계속 받았습니다. 증거가 확인된 사건에 대해 순순히 유죄를 인정하고 자신의 살인죄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FBI는 피해 여성들의 초상화를 지도와 매칭시켜서 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데이터베이스화했습니다. 리틀이 새로운 초상화를 그리면 관련 지역 방송에서 속보로 알려 피해자들의 제보를 받고 있을 정도입니다.

● 살인마의 자기 합리화…"억울한 사람이 풀려나는 계기가 될 것"

이미 79세인 리틀은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수많은 만성질환도 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피눈물 나게 한 희대의 살인마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지만, 수사 기관은 마음이 급합니다. 리틀이 죽고 나면 원인 모르게 숨진 희생자들의 사건이 그대로 묻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리틀은 교도소에서 CBS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내가 저지른 살인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이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자백으로 억울한 사람이 나온다면 신이 조금은 웃지 않겠냐"고 자신을 합리화했습니다. 리틀은 역사에 남는 최악의 살인마가 됐다는 자신의 경력에 대해 "그건 영광이 아니라 저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자신에 대한 연민일 뿐이지, 피해자에 대한 진솔한 사과나 자책은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사이코 패스적인 발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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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 정의는 사회적 약자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비참한 현실

새뮤얼 리틀 사건을 보면서 가장 큰 의문으로 남는 건, 이런 천인공노할 범죄를 35년간 저지르면서 어떻게 한 번도 검거되지 않았느냐입니다. 답은 뜻밖에 간단했습니다. 그는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관심 받지 못하는 여성들만 골랐습니다. 성매매 여성이나 마약에 중독돼 심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성을 골랐는데, 지금까지 시신조차 찾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는 "수사 기관이 그런 여성들에 대해서는 진상을 규명할 생각이 없었다"고 조롱했습니다. 사법적 정의는 힘없는 자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비참한 사회 현실과 진상 규명을 위해 살인마와 타협해야 하는 수사기관의 딜레마까지, 새뮤얼 리틀 사건은 그 자체로 미국 사회의 많은 모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김수형 기자(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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