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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지키려는 자 vs 뺏으려는 자, 돌고 도는 세계패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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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진의 아유레디 대한민국-39] 지난주 지구상 가장 큰 규모의 열병식이 열렸다. 건국 70주년을 맞은 중국의 무력 과시였다. 특히 이 열병식에는 사거리가 1만4000㎞에 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41'이 최초로 등장했는데, 이는 오차범위가 100m에 불과하고, 핵탄두를 10개까지 탑재할 수 있다고 하니, 쉽게 말해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미국 전역은 물론)에 핵공격이 가능함을 과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통화전쟁, 금융전쟁, 기술전쟁 등 양국 간의 패권다툼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작금의 동북아 정세, 좀 더 크게 보면 일종의 세계 정치·경제 전쟁을 바라보며 느끼는 바가 크다하겠지만, 이는 어찌 보면 물 흐르듯 지나가는 역사의 한 단편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역사를 곱씹어보면 모든 강대국은 세계 패권을 쥐기도 했지만 예외 없이 쇠퇴기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예컨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던 1400년대 말을 전후로 세계 패권은 포르투갈이 쥐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자연스레 스페인으로, 그리고 네덜란드(동인도회사와 암스테르담은행 설립)로 넘어갔다. 연이어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영국은 경제적 영향력을 발판 삼아 패권적 지위를 자연스레 획득하기도 했다. 19세기 전체를 고스란히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 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의 패권국으로서의 지위가 견고해졌는데, 그 내면에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신흥 도전국들 간의 전쟁이 있었다(우리 모두 잘 알듯이) 독일의 야심이 좌절되며, 세계 패권은 어찌 보면 어부지리로 신흥 대국이던 미국으로 넘어갔다. 당시 지구 부(富)의 절반가량이 미국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니 패권 이동은 그리 놀랍지 않다. 심지어 1990년대 초 소련(그리고 동구권)의 붕괴로 미국은 일극 체제의 최정상 지위에 올라서게 되었고 이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매일경제

독수리(미국)와 용(중국)의 싸움 /출처=이코노믹리뷰, 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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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조금은 자만했던 걸까. 항상 그랬듯, 조용한 곳에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꿈꾸던 국가가 있었다. 바로 중국이다. 그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기존 패권국 영국과 신흥 도전국 독일 간의 다툼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다. 영국이 패권국 지위를 얻어가는 과정은 신기술 개발, 신상품, 생산방식 혁신 등을 통한 산업의 경쟁 우위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패권을 거머쥔 영국에서는 신기술 개발 등을 위한 국내 투자보다는 비대해진 금융산업을 기반으로 한 해외 자본투자, 일종의 투기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경제활동이 주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도전국이었던 독일은 영국이 패권국 지위를 얻어가는 초기 과정을 답습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정부분)국가 주도의 산업 발전, 국제무역 기반의 국부 창출 전략 등을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미국의 경제 구조는 영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잃어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독일과 중국은 어떤가.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국제무역의 중요성을 가장 강력히 부르짖고 있는 건 중국이고 단연 세계의 공장 아니던가. 1870년 전후의 영국과 독일, 2008년 전후의 미국과 중국은 역사적 평행이론을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2008년 금융위기를 단순히 한 금융회사(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21세기 패권전쟁을 보면 신흥 패권국의 도전 방식(혹은 전략)에 차이가 있어 보인다. 우선 동아시아에서의 중국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 '차세안(ChAsean)'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니. 중국은 주변 개도국에 대한 차관이나 인프라 투자를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꾸준히 그리고 강력하게 확대시켜왔고, (대한민국을 포함해) 상당수의 국가가 이미 중국 경제권에 통합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은 어떤가. 중국의 신실크로드와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 이를 구체화시키고자 창설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유라시아 대륙, 더 나아가 중동과 아프리카 등에까지 경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신흥 패권 도전국으로서 '전략의 결정판'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의 세계은행, 유럽의 국제통화기금, 일본의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경제를 좌지우지해오던 기존 패권 기관에 대한 강력한 도전인 셈이다.

그뿐인가. 금융과 통화 외교에서도 중국은 공세적이다. 위안화 결제 방식을 주변국들과의 거래에도 적용하고 있고, 더 나아가 위안화의 국제화까지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한때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던 쑹훙빙의 '화폐전쟁'은 미국의 기축 통화국으로서 위상 남용에 대해 전 세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적지 않은 우려를 갖게 만들기도 했다.

지난주 거대한 열병식에서 증명된 중국의 군사력 그리고 이러한 군사굴기의 한 단편인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변국과의 분쟁은, 플레이어로도 볼 수 있는 우리 대한민국에는 결코 가볍게 간주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여기에는 주변국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2011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의 재균형(rebalancing) 전략, 연이어 천명된 2019년 인도태평양 전략이 깊게 관여돼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기존 세계 질서를 유지하려는 자와 새로운 질서를 짜보려는 자 간의 한 치의 물러섬이 가능하지 않은 대립 상황은 상당 기간 진행될 것이다. 국제정세를 꿰뚫지 못해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수차례 점령되고 분할되며 심지어 한때 지도에서 사라져버리는 치욕(무려 123년간)을 경험한 폴란드를 생각해봐라. 또한 19세기 후반 서구 제국주의가 동북아에 밀려 들어올 당시 나름 영리하고 재빠르게 대응했던 일본, 반면 쇄국정책 유지 여부에 관해 국가 역량을 결집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 구한말 조선을 생각해보면 급변하는 국제 정치판을 냉철하게 읽을 수 있는 지도자의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겠다.

고대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는 국제정치의 속성을 '역설의 논리(logic of paradox)'로서 정의해보고자 했다. "Si Vis Pacem, Para Bellum(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에 대비하라)"이라고. 즉 미·중 패권전쟁이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지에 관해, 현실을 냉철히 볼 수 있는 매의 눈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절실하다. 이렇게 중요한 국제정치 현안을 그저 옆집 불구경하듯 보지 말자.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그저 지도자들에게만 맡겨두지 말자. 우리 개개인부터 깊은 관심을 갖고, 국가가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이 우리 대한민국 국익의 극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도 해보자. '역설의 논리'를 명심하며 말이다.

※본 칼럼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소속 기관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

[백승진 유엔 정치경제학자]

현재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경제정책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불평등의 한국 사회 진단과 해법' 'The Political Economy of Neo-modernisation(신근대화 정치경제론)' '아유레디?: 준비하라 내일이 네 인생의 첫날인 것처럼'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며 국제사회의 지속가능발전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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