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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 장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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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156] ◆임요환과 이상혁 사이에 장재호가 있다

e스포츠가 상당한 열기를 뿜어내면서 이제 여러 게임 중계는 꽤나 보편적인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시각 매체 전반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던 지상파 텔레비전 비중이 크게 줄고, 그 빈자리를 유튜브나 트위치 등의 동영상 서비스가 채우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20세기 말 소규모 방송에서 간략하게 편성하던 '스타크래프트 한 판' 보여주기 정도에 머물렀던 e스포츠는 이제 전용구장과 대규모 이벤트, 주력 선수들의 높은 인지도와 연봉 등을 통해 아예 지상파 중계라는 프로 스포츠의 외연을 넘어선 공간에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e스포츠의 본산이자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그래서 역대로 상당한 수준의 프로게이머들이 줄줄이 터져나왔다. e스포츠가 상당한 수준의 대중화를 거쳤고, 그 속에서 선수 개개인 또한 비단 게임 안에서 모습뿐 아니라 게임 바깥의 미디어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만약 게임을 직접 하거나 e스포츠를 안 본다는 사람이라도 높은 확률로 프로게이머 두 명을 꼽으라면 임요환과 이상혁을 꼽는 일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임요환과 이상혁. 아니 세간에는 주로 임요환과 페이커로 언급되는 둘은 확실히 한국 프로게임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본명인 임요환으로 불리는 '스타크래프트'의 Slayers_boxeR와 본명보다 Faker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해진 이상혁의 차이는 한편으로 두 세대 프로게임 씬의 넓이와 시청자층, 분위기 차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시대도 별로 겹치지 않는 두 스타의 차이 때문에 간간이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는 '임요환 vs 페이커'의 최강자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e스포츠 플레이어라고 했을 때, 이 둘에 비해 결코 빠지지 않는 인물이 하나 더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언급되지 않는 것은 살짝 아쉬운 부분이다. 수많은 국제대회를 휩쓸고 언제나 기발한 전략과 화려한 컨트롤로 두터운 인기도 보유했지만 아쉽게도 해당 게임의 한국 내 e스포츠 씬이 부실해 상대적으로 거론되지 못한 게이머의 이름은 바로 '워크래프트 3'의 안드로 장, 'Moon' 장재호다.

◆불운했던 워3리그의 신화, Moon 장재호

'스타크래프트 1'이 공전의 히트를 이끌어내는 와중에 출시된 판타지 기반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워크래프트 3'는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형성된 e스포츠 씬의 영향을 받으며 출시 초창기부터 점차 e스포츠화의 동력을 일궈나가고 있었다. 여러 선수들이 등장했고, '포스트 임요환'으로 점쳐지던 '낭만오크' 이중헌을 중심으로 일련의 팬덤도 생겨나던 시점이었지만 리그는 맵 조작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겪으며 끝내 국내에서는 일어서기 힘든 상황을 맞았다.

국내 리그는 몰락했지만, '워크래프트 3' 리그는 유럽이나 중국 등지에서는 여전히 인기를 끌며 명백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 해외 리그를 휘저으며 '워크래프트 3'의 강자로 군림했던 이가 바로 장재호였다.

Moon이라는 닉네임으로 널리 알려진 장재호는 얼마 못 가고 사라진 국내 리그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는 중이었고, 이는 해외 리그로 진출한 뒤에도 빛을 발했다. 2003~2004년에는 MBC게임배 프라임리그에서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국제대회에서도 숱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특히 '워크래프트 3'가 인기 있었던 중국 e스포츠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장재호는 게임 한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상당한 팬덤의 지지를 받아 중국 아시안게임의 성화 봉송 주자로도 등장할 정도였다.

장재호의 스타성은 단지 게임 실력이 좋은 데 머무르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를 안드로메다까지 날려버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그의 별명 '안드로 장'은 매번 기발하고 창의적인 쇼맨십이 덧붙은 플레이를 통해 그 승리들을 일궈냈다는 점에 있었다. 마치 '스타크래프트' 초창기의 임요환이 그랬던 것처럼 장재호의 플레이는 남들이 다 하는 방식이 아니라 좀 더 새롭고 독창적인 길을 찾아가는 방식이었고, 중국 워3리그의 팬들 또한 이러한 장재호의 스타일에 크게 반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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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래프트 프로리그는 오래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여전히 장재호는 그 한복판에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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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영향력을 포함한다면 프로게이머 3인방으로 이야기해야

여러모로 군입대로 잠시 활동이 뜸해 은퇴 이야기도 오갔지만, 장재호는 최근까지도 꾸준하게 '워크래프트 3' 게이머 활동을 이어가며 아직까지 건재한 실력을 스트리밍을 통해 뽐내고 있다. 우승 경력이나 해당 게임에서 차지하는 위상,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커리어와 팬덤 및 스타성에 이르기까지 프로게이머로서 장재호라는 선수가 격하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국내 게임리그에서 '워크래프트 3'가 큰 흥행을 이끌지 못했다는 점은 그가 일궈낸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뽑는 프로게이머라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다만 국제적인 영향력까지를 생각한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게이머로 두 명만이 거론된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워크래프트 3'는 국내에서의 인기와 달리 해외에서는 상당한 흥행을 이끌어낸 리그이기 때문이다. e스포츠 종주국으로 설립한 명예의 전당에 장재호 선수가 HONORS가 아니라 STARS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임요환-장재호-이상혁 3인방으로 부르는 것이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측면에서는 좀 더 외연 확대가 가능한 호명은 아닌 것일까.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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