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5 (수)

"빨간 옷 입으면 죽는다" 화성서 떠돌던 소문 5가지의 진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비가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한 여성이 밤길을 걷는다. 경찰이 살인범을 잡기 위해 여성 경찰에게 빨간 옷을 입혀 함정 수사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수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다음 날 다른 곳에서 소녀의 시신이 발견된다.

중앙일보

영화 살인의 추억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1986~1991년 경기도 화성군(현재 화성시) 일대엔 "빨간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비 오는 날과 늦은 밤에 범행이 이뤄졌다는 말도 돌면서 해만 지면 코앞에 옆집으로 놀러 가는 사람도 없었다.

당시 돌았던 소문을 되짚어봤다.



① 빨간 옷 입은 사람만 죽었다?



6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1987년 5월. 한 40대 남성이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됐다. 아내가 가출한 뒤 밤마다 길을 배회한다는 이 남성은 6차 사건 시신 발견 5일 전 모 유흥업소 직원에게 "2~3일 이내에 또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너도 빨간 옷을 입고 있으면 이틀 내로 죽게 된다"고 말했다고 했다는 이유다.

당시 언론은 이 내용을 보도하면서 "피살된 부녀자 중 지난해 12월21일 숨진 채 발견된 여성(4차 피해자) 등 3명이 빨간 상의를 입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실제로 당시 화성 지역에선 "빨간 옷을 입지 말라"는 말이 대대적으로 돌았다.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진안동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당시 빨간 옷을 입지 말라는 말이 대대적으로 퍼졌다"며 "아무래도 빨간색이 화려해 범인이 눈여겨볼 수 있으니 눈에 띄는 옷은 입지 말라는 의미에서 빨간색 옷을 피하라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② 비 오는 날마다 시신이 나왔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선 비가 내리는 날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설정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화성 사건도 모두 비가 오는 날 발생했다는 관측이 많다.

실제로 당시 화성에서도 "비가 오면 살인 사건이 났다"는 소문이 났다. 하지만 비가 온 것은 4차와 6차 사건뿐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비가 오는 날 범행이 이뤄졌다고 생각했을까. 범행 현장인 화성군은 당시 개발이 되지 않아 논과 밭, 야산 등으로 이뤄져 외진 곳이 많았다. 가로등이 없는 곳도 많았다.

비가 오면 날은 평소보다 어두워진다.

중앙일보

화성 사건 당시 유류품을 수사관들이 수색하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민들은 "거듭된 살인 사건으로 분위기가 흉흉하다 보니 여성이 어두울 때 혼자 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비 오는 날에 살인 사건이 났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병점동(당시 병점리)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당시 학교에선 4~5명씩 짝을 지워서 집에 보냈다"고 분위기를 전하며 "겨울같이 해가 짧을 땐 하교 시간 전부터 자녀를 데리러 온 부모 등으로 학교 앞이 북적였다"고 말했다.



③ 젊은 여자만 노렸다?



6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이후인 1987년 5월 12일 자 중앙일보 '화성 마을의 공포' 기사는 "한적하고 평화롭던 고을이 살인 사건으로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마을로 변모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연쇄살인은 논두렁에서 거푸 발생했다. 범행수법도 비슷했다. 하나같이 미모의 여성들만 골라 욕을 보인 뒤 뒤에서 목을 조르는 수법을 사용했다"고 적었다.

당시 화성에선 "피해자는 젊은 여성"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하지만 1986년 9월 발생했던 1차 사건의 피해자는 딸의 집에서 잠을 자고 나와 귀가하던 72세 여성이었다. 7차 피해자와 10차 피해자도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귀가하던 54세, 69세 여성이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가 저지른 또 다른 범행으로 추정되는 1986년 2월에서 7월까지 발생한 7건의 연쇄 강간 사건과 1건의 미수 사건 피해자 5명은 10~30대지만 3명은 40대였다. 피해자의 상당수가 10~20대이긴 하지만 모두 젊은 여성은 아니었던 셈이다.

중앙일보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④ 속옷을 머리에 씌우고 스타킹으로 묶었다?



"피해자의 옷가지 등으로 결박하고 재갈을 물린 뒤 머리에 속옷을 씌웠다." 이춘재 특유의 범행 인증(시그니처·Signature)으로 알려진 수법이다. 이로 인해 피해자의 옷가지 등이 범행 도구로 사용된 사건은 전부 이춘재가 연관된 범행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전에 발생하기 이전인 1986년 2월에서 같은 해 7월까지 발생한 화성 연쇄 강간·강간미수 사건과 1987년 12월 발생한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 1991년 1월 청주시 가경동에서 발견된 17세 여성 시신 등이 대표적이다. 경찰도 이들 사건이 이춘재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서 이춘재의 시그니처가 발견된 것은 아니다. 1·2차 사건은 손으로 목을 조른 흔적이 발견됐고 재갈이나 결박도 없었다. 6차 사건과 10차 사건도 피해자가 착용하거나 가지고 있던 옷가지로 목을 조르긴 했지만, 결박이나 재갈을 물린 흔적은 없었다. 피해자의 머리에 속옷을 씌운 행위도 3차, 4차 사건이 유일했다.

현재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사건은 4차, 5차, 7차, 9차 사건뿐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다른 용의자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이춘재가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는 8차 사건의 경우도 이춘재의 시그니처는 없었다. 그래서 당시 경찰은 8차 사건의 경우 별개 사건으로 분류하고 수사해 윤모(당시 22세)를 검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씨는 현재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상태다.

중앙일보

10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있는 경찰관들.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⑤ 경찰이 무당을 찾아갔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1980년대 말. 화성군 태안읍 일대 논두렁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라고 적힌 허수아비가 세워졌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고민하던 경찰이 무당의 조언을 얻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사건 해결에 고심하던 경찰은 심령술사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심령술사를 자처한 재미교포 A씨(당시 47세)는 "꿈속에서 화성 사건 용의자의 이름이 적힌 편지봉투를 받았는데 B씨의 이름이 적혔다"고 주장했다. 이후 B씨는 1992년 4·5차 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수사를 받았다.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도 A씨가 다른 경찰서에 제보하면서 수사를 받는 날이 이어졌고 B씨는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 B씨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승소했다. 2009년엔 A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유죄판결을 받아냈지만, A씨가 해외에 체류해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모란·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