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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히든챔피언의 비밀]세계 1위 SKF “우리는 베어링도 팔고 서비스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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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SKF 100년 혁신 DNA

제품 팔고 난 뒤 작동까지 책임

윤활·모니터링 설비 묶어 공급

“싼 값에 고객 서비스 하는 게 혁신”

중앙일보

테오 쉘베리 SKF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지난달 1일 스웨덴 예테보리 본사에서 SKF의 혁신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테보리(스웨덴)=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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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스웨덴 예테보리 외곽의 SKF 본사 앞 거대한 금속 구(球)가 눈에 띄었다. SKF는 세계 베어링 시장점유율 30%를 넘는 ‘히든 챔피언’이다. 매출액은 877억 스웨덴크로나(약 10조4000억원·2018년 기준)이지만 영업이익은 1조3000억원이 넘는다. 매년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스웨덴의 대표 부품기업이다.

테오 쉘베리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SKF는 제조업체가 아니라 서비스 업체”라고 소개했다. 수백 종의 베어링을 생산하며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SKF가 스스로 서비스 기업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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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SKF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중 하나다. [사진 S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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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창업해 100년을 이어온 기업답게 60년대에 지은 고층건물과 100년 넘은 옛 공장 건물이 공존하고 있다. 본사 1층 로비엔 20세기 초 SKF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자동조심(自動彫心·self-aligning) 볼 베어링이 전시돼 있다. 스스로 중심을 잡으며 회전하는 이 베어링은 세계 기계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발명품이다.

쉘베리 디렉터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베어링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열을 식혀주고 윤활유를 제대로 공급하며, 이 과정이 빈틈없이 이뤄지는지 확인하는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베어링을 만드는 회사는 많지만 이런 토탈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회사는 SKF가 유일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혁신(革新)’은 히든 챔피언의 또 다른 비결이다. 세계 1위를 놓치지 않는 100년 기업이지만 경쟁력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혁신을 통해 2등과의 격차를 벌린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SKF의 창업 정신은 100년을 이어 온 DNA로 기업 깊숙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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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F를 창업한 스벤 빙크스트는 방직공장의 보수담당 엔지니어였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창업 정신은 100년 혁신의 DNA가 됐다. [사진 SKF]


창업자 스벤 빙크스트(1876~1953)는 섬유공장의 보수담당 엔지니어였다. 예테보리는 진흙층이 많은 지역이었다. 땅이 무르다 보니 진동 때문에 공장 지붕에 매달린 방직기 베어링의 축이 틀어지기 일쑤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빙크스트는 회전하며 중심을 잡는 ‘자동조심 베어링’을 개발했다. 1907년 특허를 받은 뒤 세운 회사가 SKF다.

스웨덴의 유명 자동차 회사 볼보 역시 SKF의 자회사에서 출발했다. SKF 기술자였던 아서 가브리엘손과 구스타프 라손은 자동차용 베어링을 연구했는데, 그들이 만든 자동차에 ‘볼보’란 이름을 붙였다. SKF는 1935년 자동차 사업부문인 볼보를 매각하고 베어링 사업에 집중했다.

백성현 SKF코리아 매니저는 “창업 자체가 혁신에서 출발한 만큼, 혁신의 유산(heritage)은 SKF를 정의하는 철학”이라고 말했다.

치기공 기구에 들어가는 미세 베어링부터 원자력 발전소용 거대 베어링까지 분야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지만 SKF는 볼(ball)이나 롤러(roller) 타입의 베어링만 제공하지 않는다. ‘기계의 쌀’이라 불리는 베어링은 고속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내구성과 정밀함이 필수다.

여기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자동급유장치와 윤활시스템, 내부의 온도와 정상 작동 여부를 체크하는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공급하는 게 SKF의 경쟁력이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공장 설비 전체를 함께 만들고,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로보틱스’ 시스템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다. 유지보수를 위한 공구부터 시스템 업그레이드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해주는 점에서 ‘서비스 업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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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링을 만드는 회사는 많지만, 고속 회전하는 베어링의 윤활 시스템과 내부 모니터링 솔루션까지 한꺼번에 서비스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SKF가 세계 최고 베어링 회사로 인정받는 이유다. SKF의 자동 윤활시스템 모습. [사진 S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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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F가 스스로 서비스 기업으로 정의하고, 자신들의 사업을 ‘구독(Subscription)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으로 부르는 이유다. 백성현 매니저는 “규격만 맞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초고정밀 기계일수록 베어링의 내구품질과 퍼포먼스의 균일성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본사 옆 붉은 벽돌로 된 ‘D공장’을 찾았다. 100년이 넘은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반도체 공장을 연상할 만큼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무인 스마트 공장 내엔 자율주행 ‘팔레트’ 로봇이 부품과 반제품을 실어 날랐다. 로봇이 이동하는 경로에 사람이 들어가면 스스로 멈춘 뒤, 공정 속도에 맞춰 부품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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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F 예테보리 스마트 공장에서 로봇이 베어링은 만들고 있다. 각종 부품은 자율주행 로봇이 공정에 맞게 공급한다. [사진 S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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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0㎝까지 다양한 크기의 베어링은 한 라인에서 혼류(混流) 생산된다. 베어링의 외륜(外輪)과 내륜(內輪), 볼·롤러 모양의 베어링을 가공하고 열처리하는 과정은 모두 로봇이 담당한다. 불량품을 골라내는 공정 역시 컴퓨터가 맡는다. 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은 전량 재활용하는데 역시 자동화 공정이다.

공장 안내를 맡은 SKF 관계자는 “100년 넘게 SKF는 높은 품질과 혁신을 대표했다.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신뢰하지만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늘 갖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고가의 하이엔드 시장을 공략했지만, 중간 가격의 ‘빅 미들 마켓(Big Middle Market)’으로 시장을 넓히는 게 SKF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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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F 예테보리 스마트 공장에서 베어링에 들어가는 내륜(inner-ring)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다음 공정으로 옮겨지고 있다. [사진 S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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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베리 디렉터는 “로보틱스와 스마트 공장 같은 혁신은 중간 가격의 지불능력을 가진 고객에게 더 싼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혁신과 고객의 지불능력 사이의 밸런스를 맞춰 모든 영역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게 SKF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예테보리(스웨덴)=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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