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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작고한 남편과 제 예술철학 잔잔하게 화폭에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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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남편 회고전 연 류민자 화백 / 1970년대 첫 개인전에 실망한 아내에 / “그림에 어디 동양화·서양화가 따로 있나 / 당신의 그림만 그리면 된다”며 토닥여줘 / 다르면서 서로 닮은 작품 46점 선보여 / “남편 그늘 벗어나라지만 쉽지 않아 / 국립현대미술관서 그이 전시회 여는 게 꿈”

“그림에 동양화, 서양화가 어디 있나. 그저 민자, 너의 그림을 그리는 거야, 너만의 그림. 예술보다 인생이 더 소중한 거지. 영글고 참된 인생이 가득하면 그림도 그 속에서 스스로 익어가는 것이다.” 한국 추상화 1세대 작가인 하인두(1930~1989)의 이 말은 아내인 류민자(77) 화백 평생의 화업 철학이 됐다. 1970년대 초 명동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류 화백이 한 선배에게 ‘이게 동양화냐’는 지적을 받고 실의에 빠지자 하 화백은 이 같은 말을 하며 아내를 위로했다. 30년 전 하 화백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류 화백은 남편의 말을 가슴에 품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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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자 화백의 최신작 ‘대나무 숲’. 류 화백은 자연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을 주제로 단속적인 붓의 터치와 보색 대비를 통해 자연의 리듬감을 시각화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오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류 화백의 개인전에는 하 화백에 대한 그리움과 부부가 공유한 예술관들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개인전으로 열리는 전시이지만 하 화백의 30주기를 맞아 이를 회고하는 전시도 함께 마련됐다. 최근 전시회장에서 만난 류 화백은 “주변에서는 이제 하인두의 그늘에서 벗어나라고, 류민자가 우뚝 서야 한다고 했지만 어떻게 그러겠나”라며 “굳이 벗어난다고 벗어날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전시장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각자 독자적인 조형성을 보여주는 작품 46점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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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두 화백의 ‘만다라’. 추상 회화 속에 불교의 원리를 담아내고자 했던 하 화백은 불교의 탱화 중 하나인 만다라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통해 우주의 흐름과 그 본질을 깨닫고자 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하 화백은 1950년대 앵포르멜이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 영향을 받았으나 한국적 주제에 열망이 있던 그는 만다라의 기하학적 형태와 불교 사상을 주로 작품에 담았다. 아울러 오방색과 단청에서 나타나는 조형 효과나 색채 등 전통적인 기법을 작업에 적용해 한국적인 앵포르멜 화풍을 완성했다.

고 천경자 화백의 제자로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인 류 화백의 작품은 한국화와 서양화를 넘나든다. 그도 전통과 불교사상을 기조로 비정형의 추상을 선보여왔다. 다만 류 화백은 하 화백과는 달리 자연이라는 대상을 재현하며 추상과 구상의 조형 양식을 모두 실험했다.

이처럼 두 사람의 작품은 비슷한 듯 닮아 있다. 강렬한 색채와 단청 무늬처럼 이어지는 색띠가 특히 그렇다. “제 작품 속 색띠가 남편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고요? 원래는 제가 먼저했어요. 작업실을 같이 쓰다 보니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어요. 선생님(남편)이 살아 계셨을 때도 내가 먼저 했네, 아니네 투닥거리고 했었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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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자 화백의 ‘피안’. 류 화백은 자연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을 주제로 단속적인 붓의 터치와 보색 대비를 통해 자연의 리듬감을 시각화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류 화백은 남편 하 화백의 못 다 이룬 꿈을 아쉬워하며 그리움을 나타냈다. 그는 “옛날에 선생님 조교였던 박서보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을 보니 부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면서 한 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국에 흩어진 남편의 작품을 모아 전시를 하는 게 내 꿈”이라며 “고생만 하다 간 남편인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보란 듯이 전시를 열어주고 싶다”고 당부하듯 강조했다.

전시장에는 하 화백이 잠들어 있는 경기 양평 청계리의 벚꽃 핀 모습을 담은 작품 ‘청화예원’도 걸렸다. “30년 전 선생님을 보내면서 심은 나무가 벌써 아름드리가 됐어요. 세월이 참 빠르네요. 남편은 친구이자 선생님이었어요. 남편이 있을 때는 서로 가차 없이 얘기해주고 그랬는데 좋은 스승이자 벗이 없으니 아쉽네요. 그 사람이 살아 있었다면 그림이 더 밝고 명랑해졌을 텐데 말이에요.”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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