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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과학을읽다]프로파일링·범죄심리학·과학수사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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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사진=영화 '살인의 추억' 스크린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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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는 어떻게 드러나게 됐을까요? 최근 보도에서 '프로파일링(profiling)의 승리'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이춘재라는 이름이 밝혀진 과정을 살펴보면, 새로 개발된 잔사 DNA 증폭 및 복권기술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신기술로 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품에서 새로운 DNA를 뽑아냈고, 수감자들의 DNA 데이터베이스(DB)에서 일치하는 DNA가 이춘재의 것으로 밝혀져 진범의 윤곽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수사의 승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용의자의 심리를 분석·설득해서 자백을 이끌어 냈다면 그것은 '범죄심리학'의 힘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프로파일링과 범죄심리학, 과학수사는 저마다 다른 뜻이 잇는 것일까요, 아니면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일까요?


'프로파일러(Profiler)'는 범죄분석 심리관입니다. 사건의 정황이나 단서들을 분석해 용의자의 성격과 행동유형, 성별·나이·직업·취향·콤플렉스 등을 추론하고, 수사방향을 설정해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 나가는 역할을 합니다. 또 지목된 용의자의 도주경로·은신처 등을 예상하고, 검거 후에는 심리적 전략을 구사해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기도 합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범행의 목적도 알 수 없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고 있습니다. 또 범죄가 점차 지능화되면서 현장에 증거물도 남기지 않으면서 고도화된 수사기법이 필요해졌습니다. 프로파일링 수사법이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1956년 미국 뉴욕에서 16년 동안 폭탄테러를 일으키며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폭파범 조지 메트스키가 경찰에 검거됩니다. 이 사건이 정신과 의사 제임스 부뤼셀의 심리적 추정에 의해 해결되면서 미국에서 프로파일링 수사가 발전하게 됩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972년 행동과학부를 신설해 프로파일링 수사법을 공식 도입했고, 1983년 국립흉악범죄분석센터(NCAVC)를 설립해 관련 DB를 구축하게 됩니다. 지금은 수사관들이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보고서를 작성해 NCAVC에 프로파일링을 의뢰하는 것이 수사의 시작이 될 정도로 일반화돼 있습니다.


국내에는 2000년 서울지방경찰청이 형사과 과학수사계 산하에 범죄행동분석팀을 설치하면서 프로파일러가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국내에서 떠들썩했던 대부분의 사건은 프로파일링 수사를 통해 해결하게 됩니다.


프로파일링은 특정 범죄의 유형, 범인의 심리나 행동분석을 통해 범인 검거의 효율성을 높이고, 범인과 고도의 심리전을 펼쳐 자백을 받아내기도 합니다. 범죄행동분석팀은 과학수사계에 속하지만 지문이나 DNA 등 법의학적 증거를 찾는데 중점을 두는 과학수사와는 구분됩니다.


과학수사는 범행 현장에 남겨진 지문, 머리카락, 혈흔 등 여러 가지 증거물에서 나타나는 과학적 지식과 방법을 동원해 범행 방식·동기,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찾아냅니다.


프로파일링은 과학적 지식을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과학수사와 동일하지만, 과학적 지식을 인간의 심리와 행동의 상관관계를 다루는데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동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행위법칙을 이용해 범죄자를 추적한다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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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링 수사법으로 흉악범을 검거하는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홍보 화면.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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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프로파일러는 '행위에 어떤 특성이 부여될 수 있는 범죄'일 경우, 그러니까 특징이 별로 없는 단순 범죄보다 연쇄살인 등 고도의 수사기법이 필요할 경우 활용할 만한 수사법입니다. 가령 화가 나서 누군가를 폭행했다거나, 남의 돈을 훔쳤다거나 하는 등의 범죄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프로파일링이 어렵습니다. 반면, 살인처럼 범인의 성격이 행동에 반영되는 범죄를 수사할 때는 효과적으로 활용됩니다.


프로파일링이 과학적 지식을 인간의 심리와 행동의 상관관계를 다루는데 활용된다면 '범죄심리학'과 가깝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범죄심리학은 심리학적 이론을 중심으로 범죄의 원인과 범죄자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응용심리학 분야이기 때문이지요. 즉 범죄자의 의도, 생각, 목적, 반응 등 범죄자의 행동, 교정, 예방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범죄심리학은 프로파일링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보다 세밀하게 따져보면 수사 단계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수사 단계에서 프로파일링은 범인을 검거하기 위한 것이라면, 검거 이후 기소과정에서는 전문수사 자문위원이, 재판과정에서는 전문심리위원들의 일이 범죄심리학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죄심리학자는 형사절차 각 단계에서 사건이나 범죄자에 대한 전문적 의견이 필요할 때 자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굳이 차이점을 나누려고 한다면, 범인을 잡기까지는 프로파일링, 기소 이후는 범죄심리학의 역할이라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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