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민들이 출간 지원…"작품 널리 읽혀 비극 없어지길"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와 김금숙 작가 |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제 작품을 일본에서 출간하기 위해 펀딩이 이뤄졌어요. 많은 일본 시민들의 참여로 예정보다 일찍 목표액을 달성해 깜짝 놀랐어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삶을 그린 만화 '풀'의 저자인 김금숙(48) 작가는 내년 1월 자신의 작품을 일본에서 출간한다.
김 작가는 비바람에도 꿋꿋이 생존하는 '풀'이야말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해 작품 이름으로 정했다.
일본 정부가 사죄하지 않은 과거사를 다룬 작품인 만큼 일본 출간은 생각지 못했지만, 일본 시민들이 앞장서면서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풀 일본 출간을 위해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은 이미 목표액인 145만엔(한화 1천622만원)을 달성하고 현재 두 번째 목표액인 260만8천엔(한화 2천917만원)을 향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펀딩은 일본 시민활동가 스미에 스즈키씨 등으로 구성된 '풀 일본어판 출판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두 번째 펀딩으로 모은 돈을 책 시판 가격을 낮추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이 책을 사서 읽고 역사를 바로 보게 하기 위해서다.
김 작가는 "풀을 일본에서 출간한다고 생각했을 때 많은 사람의 희생이 예상됐다. 풀은 결국 인권을 다룬 작품인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일본 출간을 하고 싶지 않았다"며 일본 출간 제안을 받은 당시의 심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의식 있는 일본 시민들이 풀 출간에 앞장서고 지원했다"며 "이들을 보면 한일 관계의 장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며 일본 출간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인터뷰하는 김금숙 작가 |
김 작가가 풀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록을 바탕으로 그린 단편 만화 '비밀'을 마무리한 뒤였다.
무거운 이야기를 짧게 다룬 것에 아쉬움이 컸던 그는 장편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일본군 위안부 증언을 직접 듣기 위해 피해자인 이옥선(92) 할머니를 만났다.
이 할머니는 16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에 살다가 5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놨다.
김 작가는 할머니의 삶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부터 여성·사회계급의 문제 등을 작품에 녹여내기 위해 꼬박 3년을 작품에 매달렸다.
2017년 풀을 국내에 출간한 뒤로는 아픈 역사의 진실을 널리 알리고자 해외 출간에 힘을 쏟았다.
이 노력 덕분에 풀은 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 등 7개 언어로 번역돼 해외에 출간됐다.
올해 7월에는 프랑스 만화 기자·비평가 협회(ACBD)가 시상하는 아시아만화상 2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지난달에는 프랑스 진보 성향 일간지인 '휴머니티'가 주최한 '제1회 휴머니티 만화상'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휴머니티 만화상은 1년에 한 번 인간의 삶과 인권을 다룬 만화작품을 선정하는 상으로 올해 처음 마련됐으며 대상과 심사위원 특별상 등 2개 부문으로 구성됐다.
김 작가는 "얼마 전 이옥선 할머니가 제 작품이 일본에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셨다"며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비밀로 간직하고픈 마음속 이야기를 해주신 만큼 이 작품이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인터뷰하는 김금숙 작가 |
1971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7살 때 서울로 올라온 김 작가는 대학 졸업 뒤 프랑스로 무작정 떠나 조각가·만화가로 20년 가까이 활동했다.
2011년 한국에 돌아온 김 작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아버지의 노래',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 우리나라 원폭 피해자를 다룬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 등 현대사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꾸준히 그려왔다.
현재는 인천 강화에서 지내며 한국전쟁 이후 한 예술가를 통해 성장하는 청춘을 다룬 박완서 작가의 소설 '나목'을 소재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tomato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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