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예테보리도서전' 한국 주빈국 참가
'인간과 인간성' 주제 아래 131종 전시
한강 작가 등 한국 문인들 '세미나' 인기
‘2019 예테보리 도서전’ 전경(사진=예테보리 도서전). |
[예테보리=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지난 27일(현지시간) 오후 스웨덴 ‘예테보리 도서전’이 열리는 박람회장 내 세미나실 앞엔 30분 전부터 긴 대기줄이 늘어섰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 한강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인파였다. 이날 한강 작가는 진은영 시인과 함께 ‘사회 역사적 트라우마’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세미나실에 마련된 120석은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는 관람객도 있었다. 이튿날 열린 단독 세미나에서도 375석이 모두 꽉 찼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문학 한류’가 이번에는 북유럽으로 향했다.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열린 ‘2019 예테보리 도서전’은 연일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올해 도서전은 ‘대한민국’ ‘성평등’ ‘미디어 정보 해독력’을 주제로 열렸다. 축구장 1개 면적(7140㎡)을 뛰어 넘는 약 1만1000㎡ 규모의 전시장에 38개국, 800여개 기관·회사의 부스가 설치됐다.
1985년 시작한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은 40개국 800개사의 출판관계자가 참가하고 8만5000명이 방문하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도서전이다. 한국은 스웨덴과의 수교 60주년을 맞아 주빈국으로 초청됐다.
도서전 기간 동안에는 300개가 넘는 세미나가 열렸다. 한강 작가를 비롯해 현기영·김금희·김숨·조해진 작가, 김행숙·신용목 시인 등 한국 문인들이 진행하는 세미나와 북토크 등도 다채롭게 마련됐다.
26일 개막식에서 프리다 에드먼 예테보리국제도서전 디렉터는 “문학과 문화 교류를 통해 양국이 서로 더욱 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은 “한국문학이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만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2019 예테보리 도서전’에 마련된 한국관에서 개막식이 열렸다(사진=대한출판문화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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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 기울어진 한국관…“신기하고 흥미로워”
전시장 초입에 171㎡ 크기로 마련된 한국관은 일반적인 전시관과는 다르게 설치 미술작품을 연상케하는 구성으로 이목을 사로잡았다. ‘성평등’이라는 도서전의 전체 주제를 확장시켜 ‘인간과 인간성’을 주제로 삼았다. ‘사회역사적 트라우마’ ‘국가폭력’ ‘난민과 휴머니즘’ ‘기술문명과 포스트휴먼’ ‘젠더와 노동’ ‘시간의 공동체’ 등 6개의 소주제를 내걸고, 이와 관련된 도서 131종을 전시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1도 기울어진 전시장 바닥이다. 경미하게 기울어진 바닥 위에 66개의 의자를 놓고, 각 의자 밑 상자에는 해당 주제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2~3권씩 담아놨다.
한국관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이자 시인인 함성호는 “‘우리는 모두 운명의 경사에 놓인 불편한 의자에 앉아있는 존재들’이란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다”며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개념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관에서 이억배 작가의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을 들춰보던 스웨덴 주민 바르브로(Barbro·73) 씨는 “평소 한국책을 읽을 기회가 많이 없었다”며 “스웨덴과는 다른 문화를 책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 나온 군인 그림을 가리키며 “한국이 남과 북으로 나눠져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 문화를 표현한 것 같다”고 했다.
특별한 체험도 마련했다. 한국관 한켠에 마련된 헤드폰을 끼면 한국 작가들이 낭송한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는데, 또 다른 헤드폰을 끼고 있는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두 콘텐츠가 섞인다. 헤드폰을 시연해 보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이시마엘 시비야(Ishmael sibiya) 씨는 “흔히 볼 수 없었던 놀랍고 새로운 기술”이라며 “한국문학을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앞으로 한국 작가들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2019 예테보리 도서전’에 참석한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왼쪽에서 네번째)과 한국 작가들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대한출판문화협회). |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 고조”
스웨덴은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잘 알려져있지만, 전 세계에서 독서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스웨덴의 유명 작가로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쓴 요나스 요나손 등이 있다.
현재 스웨덴에는 1976년 김지하 ‘오적’을 시작으로 김소월, 이문열, 황석영, 김영하 등 작가들의 작품 33종이 출간됐다. 출간 종수가 많지는 않지만 최근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흰’이 잇달아 출간된 데 이어 김언수 작가의 ‘설계자들’도 최근 소개됐다. 스웨덴의 유력 문예지 ‘텐탈(10TAL)’은 이달 한국문학 특집호를 발간하기도 했다.
26일 한국문학번역원이 마련한 간담회에서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BTS에 대한 열렬한 사랑, 북한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 한국어 학습 열풍 등이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스웨덴에서도 한국문학 바람이 불 것이라고 확신에 가까운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번역원 통계로 보면 해외에서 한국문학 작품을 먼저 출판하겠다고 지원 신청을 해오는 건수가 5년새 10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김 원장은 “한국문학은 이제 상승기에 접어들고 있고, 이 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 도서·주제 선정을 총괄한 김동식 문학평론가는 “스웨덴 도서전 측으로부터 한강과 김언수 작가를 꼭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한강은 양성평등이란 주제에 부합하는 세계적인 작가이고 김언수 작가는 스웨덴이 스릴러 강국이라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작가들도 문학에 관심이 많은 스웨덴에 깊은 인상은 받았다고 했다. 김금희 소설가는 “스톡홀름 대학의 신입생들을 만났는데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궁금해했다”며 “행사의 공통된 관심사는 ‘미투 운동’이었는데 세계의 흐름과 한국 문단에서 일어나는 흐름이 일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현기영 작가는 “우리 한국문학이 좁은 남한땅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며 “젊은 한국작가들이 유명 도서전에 참가하는 등 해외로 진출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2019 예테보리 도서전’의 부대행사로 열린 세미나에서 한강 작가(오른쪽 첫번째)와 진은영 시인(오른쪽 두번째)이 대담을 하고 있다(사진=대한출판문화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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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전부터 대기줄…한강 작가 인기
27일 ‘사회 역사적 트라우마’를 주제로 열린 한강 작가와 진은영 시인의 세미나에서 관람객들은 노트에 필기를 하며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한국 문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한강 작가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2014년 ‘세월호 참사’ 등 한국의 트라우마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작가는 “애초에 우리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며 “‘소년이 온다’가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어 큰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인 책이며, ‘채식주의자’는 한 여자의 내면을 따라가는 작은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도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그는 “20세기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상처를 많이 남긴 시간이었다”며 “한국에서는 전쟁과 소설 ‘소년이 온다’의 근원이 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광주 출신인 한 작가는 2014년 펴낸 ‘소년이 온다’에서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은 중학생과 주변 인물의 참혹한 운명을 그렸다. 소설 ‘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고 학살이 일어났던 폴란드 바르샤바가 등장한다.
집필 당시 바르샤뱌에 머물고 있었다는 그는 “사람들이 총살당한 벽을 보존하고 그곳에서 꽃과 초로 애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수도 한복판에서 애도를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2014년 봄 한국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고 애도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런 의미를 담아 책을 썼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시선에서 쓴 시를 모은 시집 ‘엄마. 나야’에 참여했던 진은영 시인은 “같은 반 친구들과 배에 수장된 17살 소녀를 상상하면서 시를 쓴다는게 무척이나 어려웠다”며 “미약하지만 문학을 통해 연대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2019 예테보리 도서전’에 참석한 한강 작가가 관람객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사진=대한출판문화협회). |
‘2019 예테보리 도서전’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사진=대한출판문화협회). |
‘2019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한강 작가의 세미나를 듣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사진=대한출판문화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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