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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사랑보다 계급사회 폐해 그린 北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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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북한 민족가극 `춘향전` 공연 모습. [사진 제공 =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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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생각보다 '문화만큼은 우리가 같구나'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6일 저녁 열린 북한 민족가극 '춘향전' 상영회가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국내 최초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영상을 보기 위해 100명이 넘는 관객이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을 가득 채웠다. 이날 해설자로 참석한 평양음악무용대학 출신 피아니스트 김철웅은 "오랫동안 나라가 분단돼 있다 보니 (별도) 해설이 필요한 이 현실을 통감한다"며 "같자고 보는 것이지 다르자고 보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은 다르고 저 부분은 같구나, '앞으로 같아지기 위해 본다'는 마음으로 감상해주시면 좋겠다"는 당부를 전했다.

민족가극 '춘향전'은 북한 전통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1990년대 평양의 '목련비데오'사에서 정식 발행한 버전이다. 실제 가극을 찍어 보급용으로 다시 제작한 135분짜리 '가극영화'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촬영 시기와 장소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작품 초연은 평양예술단이 1988년 12월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선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민족가극이란 '노래와 음악을 기본수단으로 하는 종합적인 무대예술의 한 형태'다. 고유 양식으로 실험 과정을 거치던 해당 장르는 1971년 '피바다'라는 혁명가극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정체성을 확립한다. 지난 저녁 선보인 '춘향전'은 '피바다'식 가극의 일부로 전통 창극과 서양 오페라의 특성이 합쳐져 탄생한 작품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차이점은 작품을 아우르는 '단조 아리아'였다. 남한 판소리의 생기발랄한 눈 대목과는 달리 시종일관 처량하고 비극적인 정서가 돋보였다. 오페라도 민요도 아닌 창법이 신기하고 낯설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사랑가'는 느린 트로트풍 멜로디로 바뀌어 전혀 다른 노래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1990년도에 찍힌 영상이라는 걸 감안하면 비교적 정교하고 시원시원한 무대 연출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특이한 점은 이팔청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인 '춘향전'을 북한에서는 철저히 계급사회적인 측면으로 접근했다는 부분이다. "량반(양반)도 사람이요, 천민도 사람인데. 사랑에도 귀천 있고 빈부가 있다더냐" "한시도 너 없이는 살 수 없는 이 몸, 울면서 어머님께 애원도 하였건만 량반 례절(양반 예절) 말이 많아 널 두고 가게 된다" 등 작품은 계속해서 춘향과 몽룡의 관계를 방해하는 신분 장벽을 강조한다.

천현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는 "기존 고전소설의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보다는 둘 사이 사랑을 가로막는 계급 관계와 그것을 극복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사람을 신분에 따라 갈라놓고 차별하는 것을 비판하는 점이 북한 가극 '춘향전'과 남한 고전소설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먼 존재처럼 여겨졌던 북한 공연이지만, 관객들은 때때로 같은 장면에 공감하고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향단이와 방자가 익살스럽게 대사를 주고받거나 신임 변사또가 온 고을의 기생들을 불러들이는 '기생점고(妓生點考)' 대목에선 여지없이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작품은 그 외에도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장면을 추가하고 인물들 성격을 각색했다. 굶주린 백성들이 변사또를 찾아가 먹을 쌀을 요구하는 장면이 그것. 부정적인 탐관오리를 통해 봉건제도의 부패를 강조했다. 남한에서는 우악스럽고 해학적인 모습으로 알려진 향단이와 방자, 월매는 괄시당하고 고통받는 노동계급으로 그려진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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