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헌 고려대 교수가 쓴 '평화를 향한 근대주의 해체'
1924년 경복궁 앞 풍경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의 근대 기틀은 사실상 일제강점기에 놓였다. 일제가 주도한 경제 발전으로 시민들의 생활 수준은 높아졌다. 일본군 위안부는 군대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매춘이었고, 징용에 강제성은 없었다."
논란의 역사서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수업 시간에 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킨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생각도 식민지근대화론과 맥이 닿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 학자 도리우미 유타카(鳥海豊) 한국역사연구소 상임연구원이 이달 초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책을 출간한 데 이어 근현대사 연구자인 정태헌 고려대 교수도 동북아역사재단이 펴낸 신간 '평화를 향한 근대주의 해체'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우선 식민지를 경영하려면 '근대화'가 불가피했다고 지적한다. 제국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는 소비시장 확대와 공업 발달로 인해 일차산업 공급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러면서 "근대화를 내세운 식민주의는 식민지민들이 이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정치적 독립 의욕까지 포기하게 하는 위력을 발휘했다"며 "이를 위해 식민권력은 교육정책과 미디어를 장악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통계 자료를 검토해 경제 개발을 설명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숫자 뒤에 감춰진 민족 차별 행태를 간과하고, 통계를 맹신한다고 주장한다. 또 자본주의와 발전주의를 선으로 보는 인식이 팽배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역사의식에는 어떻게, 왜 성장했는가는 물론 성장의 귀결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며 "일제강점기에는 근대적 법제의 시행과 민족 차별이 병행됐고, 일제는 동화정책을 펴면서도 정작 '국민화' 핵심 내용이 되는 의무교육과 참정권 대상에서 조선인을 제외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식민지근대화론 뿌리에 근대가 제국주의 국가에서 식민지로 전파된다는 근대이식론, 국내총생산(GDP)으로 경제 발전을 해석하는 양적성장론, 경제적 인간의 등장을 의미하는 인적자원성장론이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그는 "식민지 재정은 일본 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집행되는 종속적 범주였으며, 양적성장론이나 인적자원성장론도 허구에 가깝다"며 "조선총독부나 일본은 조선인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논박한다.
일제강점기에 경제가 발전했다 하더라도 그 목적은 수탈에 있었다고 강조하는 저자는 양적 성장을 중시하는 근대주의의 해체를 역설하면서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사상을 따르자고 제안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잘사는 것'의 정의는 무엇일까? 양적 성장보다 평화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정의의 폭이 넓어질 것 같다. 불평등 해소와 인권 감수성 신장, 주변국과의 적대관계 완화 같은 요소도 잘사는 것의 가치 판단을 가능케 해주는 요소다."
216쪽. 1만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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