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판 만화와 비디오가 활개치던 80~90년대, 서점 만화책 코너를 보면 같은 만화가 다른 이름으로 나란히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쿵후보이 친미’만 해도 ‘권법소년 용소야’ 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더 유명했고, ‘드래곤볼’은 ‘드라곤의 비밀’ 같은 이름으로 팔리기도 했다. 당시 어린 독자들 사이에서는 ‘친미’나 ‘베지터’ 보다는 ‘용소야’와 ‘알랑이’ 같은 이름들이 더 널리 쓰이기도 했으니, 원작을 아는 팬들 사이에선 통탄할 일이었다.
게임업계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분명 제대로 된 제목이 존재하는데, 온갖 이유로 세간에서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는 게임들 말이다. 이런 게임들은 워낙 잘못된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원래 제목을 말해 주기라도 하면 못 알아듣거나 외국 이름인 줄 알고, 심한 경우에는 내가 틀렸다는 역공을 당하기도 한다. 잘못된 제목이 원제보다 더 잘 알려져 있는 억울한 게임 TOP 5를 뽑아 보았다.
TOP 5. 히어로스 오브 더 스톰, 히오스가 아니라 히어로즈 입니다?
얼마 전 블리자드 공식 리그가 예고도 없이 종료되었다가 팬들의 손에 의해 부활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히오스’. 정식 명칭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이지만, 너무 길고 부르기 어려워 다들 ‘히오스’라고 줄여 부른다. 그러나 사실 블리자드 본사에서 내려온 공식(!) 줄임말 지침은 ‘히오스’가 아니고 ‘히어로즈’다. 이는 영미권 약칭인 ‘HotS’가 ‘스타크래프트 2’ 두 번째 확장팩 ‘군단의 심장(Heart of the Swarm, HotS)’과 겹치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다.
이러한 이유로 블리자드는 2013년 게임명 결정 당시부터 꾸준히 글로벌 ‘히어로즈’ 사용을 독려했으나, 국내 게이머들은 입에도 잘 안 붙고 너무 흔한 단어라며 한 귀로 흘리고 있다. 구글에서 ‘히오스’를 치면 게임 공식 홈페이지와 게임 관련 사이트들이 뜨고, ‘히어로즈’를 치면 프로야구 구단 ‘키움 히어로즈’와 동명의 한국/미국 드라마들이 가장 위에 나올 정도다. 심지어는 방송사 보도자료나 블리자드 코리아 SNS 등에서도 ‘히오스’라는 단어를 흔히 찾을 수 있다. 애초에 게임을 통칭하는 공식 단어를 이처럼 구별력이 떨어지게 지은 데서 발생한 문제니 블리자드 측에서도 할 말이 없다.
▲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에 공허하게 울려퍼지는 '히어로즈'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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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4. 고전 비행슈팅 타수진은 원래 ‘달인’ 입니다
은색 해골모양 폭탄이 번쩍거리고 빠른 총알이 화면을 수놓는 비행슈팅게임 ‘타수진’을 기억하는가? 지금이야 초고난이도를 자랑하는 탄막슈팅 게임이 흔하지만, 당시엔 미칠 듯한 고난이도 슈팅 게임이 흔치 않았기에 특히나 기억에 남았다. 같은 50원을 넣어도 다른 게임은 최소 5~10분은 할 수 있는 반면, 이 게임은 빠르면 2분에서 잘 해야 4~5분을 넘기기 힘들었다. 따라서 ‘타수진’ 기계 앞에 앉는다는 것은 뭣도 모르는 초보, 혹은 오락실 초고수를 의미했다.
그런데 이 게임, 진짜 이름은 타수진이 아니다. 정식 명칭은 일본어로 달인(達人)을 의미하는 ‘타츠진’. 영문 표기는 ‘TATSUJIN’이다. 당시 이 게임을 한국에 수입한 곳이 90년대 초 게임 분야에서 활발히 사업을 펼쳤던 삼성전자였는데, 하필이면 제목에서 T 하나를 빼먹고 ‘TASUJIN’ 이라는 이름으로 들여온 것이다. 결국 이 게임은 한국에서만 ‘타수진’이 되었으나, 후속작인 ‘타츠진오’에 이르러서는 어떻게든 바로잡혔다. 물론 후속작이 전작만큼 인기를 못 끌어서 여전히 ‘타수진’ 이름이 대세긴 하지만…
▲ 타츠진이 타수진이 되어버리다니... (사진출처: 이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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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3. 보글보글? 그거 원래 버블버블이잖아…(삑)
90년대 초반, 오락실에서 울려퍼지는 청량하고 몽환적인 음악을 담당하던 ‘보글보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오락실을 주름잡았고 지금도 간혹 현역으로 돌아가는 등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게임이다. 사실 주변 일반인들에게 이 게임의 본명이 ‘보글보글’이 아니라고 말하면, 열에 다섯은 “아~ 그거 알아”라고 반응한다. 그리고 그 중 십중팔구는 자랑스레 이런 답변을 한다. “그거 원래 버블버블이잖아”
뭐, 진성 게이머들이라면 익히 알겠지만 이 게임의 원제는 ‘버블보블(Bubble Bobble)’이다. 하지만 ‘보블’ 이라는 단어가 버블과 흡사해 얼핏 버블버블처럼 보이기도 하고, 국내에서 워낙 ‘보글보글’이라는 자체 현지화(;;) 이름이 널리 알려졌기에 원제를 기억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오죽하면 소녀시대가 출연한 라면 CF엔 ‘보글보글송’이라는 이름으로 게임 음악이 수록됐고, 카카오 게임하기에서 서비스되다 올해 초 서비스를 종료한 이 게임의 모바일 버전은 ‘보글보글 for kakao’라는 이름이었으니. 이쯤 되면 국내 명칭은 보글보글로 통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버블'보'블 이라는 이름은 사실 기자에게도 조금 낯설다 (사진출처: 버블보블 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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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2. 이쯤 되면 초월번역, 프레디의 피자가게
게임메카 독자라면 살의로 가득찬 애니메트로닉스로부터 살아남는 공포게임 ‘프레디의 피자가게’를 다들 아시리라 믿는다. 인디게임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화제작으로 수많은 아류 게임을 낳았으며, 몇 년 전부터 게임 스트리머들의 단골 소재로 자리잡았다. 첫 작품의 성공으로 총 여섯 편에 달하는 시리즈가 나왔고, 워너 브라더스를 통해 영화화도 진행 중이니 마인크래프트 이후 인디게임계의 가장 큰 족적이라 표현할 만 하다.
그런데, 입에 쫙쫙 달라붙는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사실 정식 명칭이 아니다. 원제는 ‘파이브 나이츠 앳 프레디스(Five Nights at Freddy's)’로, 직역하면 ‘프레디 가게에서의 5일 밤’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다른 제목이 나온 것은 한국에서 쉽게 부르기 어려운 제목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FNaF 라는 약칭으로 부르지만, 한국에선 원제나 약칭을 부르기도 힘들고 직역해도 왠지 어색하다. 그 와중 1, 2편 게임의 배경이 ‘프레디 파즈베어의 피자’ 가게라는 점에서 일부 게이머들이 이 이름을 붙이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공식화 되어버렸다. 이쯤 되면 ‘사랑과 영혼’이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급 초월번역 센스가 아닐까.
▲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아니라 '파이브 나이츠 앳 프레디스'로 알려졌다면 정이 뚝 떨어질 듯 (사진출처: 스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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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1. 해적판의 아픈 흔적, 갤러그와 갤러가
1990년대 ‘스트리트 파이터 2’, 2000년대 ‘철권’과 각종 리듬게임이 오락실을 지배했다면 1980년대 오락실의 제왕은 단연 ‘갤러그’였다. 오락실 효과음 하면 생각나는 ‘뿅뿅’ 소리가 갤러그에서 비롯됐을 정도로, 당시 갤러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오락실 전체의 절반 가량이 갤러그로 차 있었던 풍경은 올드 게이머들이라면 다들 눈에 선할 것.
그러나, 사실 이 게임의 본명은 ‘갤러가(GALAGA)’다. 은하를 의미하는 갤럭시(GALAXY)와 나방 아(蛾, 일본어 독음 ‘가’)의 합성어다. 우주에서 쳐들어오는 나방 형태의 적을 의미하는 이 단어가 ‘갤러그’로 전해진 데는 당시 새싹 단계였던 아케이드 게임산업의 혼돈 때문이다. ‘갤러가’가 인기를 끌자 이름만 살짝 바꾼 수많은 짝퉁 기판이 일본과 중국(대만) 등지에서 수없이 생산됐고, 당시 국내에는 정식 제품이 아닌 해적판인 ‘갤러그(GALLAG)’만 수입됐다. 이로 인해 ‘갤러그’는 한국에선 거의 정식 게임명 취급을 받고, ‘갤러가’라고 하면 일본식 발음으로 오해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드라곤의 비밀’과 ‘용소야’와는 달리, 이 부분에서는 해적판의 승리다.
▲ 해적판의 인지도가 정식 버전을 압살한 '갤러그'와 '갤러가' (사진출처: 갤러가 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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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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