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협상 재개 앞두고 정권 전복 의사 없다 표현
폼페이오, 북에 이례적 추석 메시지
[아시아경제 백종민 선임기자]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 보좌관의 낙마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도 직접적 영향이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미 전문가들은 즉각적 영향을 예상했다. 북한에는 눈엣가시와 같던 '볼턴'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중이 북한에 잘 전달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측이 북한에 정권전복 의지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왼쪽)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이 10일(현지시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경질로 참석하지 않은 기자회견장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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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은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결정적 조커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보다는 강성 이미지의 볼턴을 내세워 협상을 뒤엎었다. 이후 북한이 볼턴과 폼페이오 장관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지만 북한이 볼턴에게 경계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을 두 번 활용하지 않았다. 협상 재개를 약속한 6ㆍ30 판문점 북ㆍ미 정상 만남에서 볼턴이 배제된 것은 그의 대북 역할이 축소됐음을 시사하는 사례로 꼽힌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차관보는 10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신뢰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며 북한 정권 붕괴를 희망하는 볼턴을 내보내는 게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도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의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가 향후 북ㆍ미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볼턴 전 보좌관은 북ㆍ미 협상 진전을 만들지 못하는 방향으로 밀고 왔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추구하는 실무회담에 대해 좀 더 열려있는 사람이 새 보좌관으로 올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북한 압박과 정권 붕괴라는 볼턴 식 대북 접근법이 사라지게 된 만큼 북한이 희망하는 체제와 안전 보장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에 요구했던 제재 해제보다는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안전보장으로 대화의 축을 바꿨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우리 정부는 볼턴 보좌관의 경질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 내용은 앞으로의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며 볼턴 경질에 따른 즉각적 영향에 대해 경계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 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진정한 비핵화 조치 없이 북한의 요구 조건을 들어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볼턴의 사임으로 미 정부내에서 대북 업무를 사실상 독점하게 된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추석 메시지에서 이례적으로 북한을 직접 언급해 눈길을 끈다. 이날 국무부를 통해 발표된 성명의 제목은 '대한민국의 추석명절(The Republic of Korea's Chuseok Holiday)'이었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남북한 주민(the people of South and North Korea)과 전 세계 한국인들에게 기쁜 추석 명절이 되길 기원한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 들어 국무장관 명의의 추석 메시지에서 '북한 주민'이 별도로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017년과 2018년에는 '한국인(Korean)'으로 통칭했다. 곧 재개될 북ㆍ미 실무협상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폼페이오 장관은 한미 동맹이 평화와 번영에 대한 공동의 이익, 민주주의와 자유ㆍ인권의 공유 가치에 단단한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북ㆍ미 실무회담 재개를 앞두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후 제기된 한미 갈등설에 대한 봉합 차원으로 풀이된다.
백종민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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