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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취업·결혼 언제"·"조국 어때"…연휴 밥상 대화가 두려운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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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 "취업·결혼 관련 질문 공세에 스트레스"

명절 고향 집 안 가기도…학원·여행으로도 대화 기피

조국 논란·반일 이슈 등 명절 밥상 주제 오를까 우려

전문가 "다른 소통 방식 존중…개인적 주제는 조심"

이데일리

추석 연휴를 앞둔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면세구역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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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대학생일 땐 군대는 언제 가느냐고 묻더니 졸업하면 취업은 언제하느냐, 취업하면 결혼 언제할 거냐, 결혼하면 애는 언제 낳을 거냐…”

서울에 사는 직장인 문현수(30)씨는 3년 전부터 설과 추석 명절 연휴 기간 고향 부산 집을 찾지 않는다. 연휴 직전 주말을 이용해 부산에 계신 부모님과 할머니만 잠시 뵙고 서울로 돌아온다. 지난 주말 이미 고향에 다녀온 문씨는 이번 추석에도 서울에 남아 지인들과 연휴를 즐길 생각이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친척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운데다가 이들이 건네는 질문이 무례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두고 명절 가족 친지들이 모인 밥상머리에서의 대화가 두려워 고향을 찾지 않거나 가족·친척들과 만남을 피하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친척들에게 듣기 싫은 명절 잔소리 1위’로 꼽히는 취업·결혼 관련 질문을 올해도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논란과 일본 불매 운동 등 최근 불거진 정치 관련 이슈들 때문에 웃어른과의 대화가 껄끄러워질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가까운 친척 사이라고 하더라도 대학·취업·직장·육아·정치 같은 이야기를 나눌 땐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심·잔소리에 스트레스 받아” 학원·여행 등 명절 모임 기피

추석을 눈 앞에 둔 10일 기자와 만난 문씨는 특히 웃어른의 질문이 취업, 결혼 등 자신들의 결점만 찾아 묻는 것처럼 들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했다. 그는 “취업 준비생일 땐 ‘취업은 언제, 어느 회사로 할 거냐’는 질문을 퍼붓던 친척들이 직장인이 되자 ‘결혼 안 하느냐’고 묻더라”면서 “걱정, 충고를 가장한 불편한 질문 때문에 연휴를 피곤하게 보낼 바에야 혼자 쉬는 게 낫다”고 밝혔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2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듣기 싫은 추석 잔소리는 △아직도 취업 준비하니(21.8%)였다. 이 밖에 △졸업하면 뭐 할 거야(16.3%) △회사 보는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야(15%)가 뒤를 이었다. 직장인이 된다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커리어가 직장인 314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인들이 꺼리는 추석 잔소리는 △돈은 얼마나 모았니(25.1%)가 가장 많았고 △결혼은 안 하니(22.2%)가 2위였다.

행정고시에 매달린 지 4년째인 김모(29)씨는 “부모님께선 끝까지 지원해 주려고 하시는데, 명절 때마다 만나는 친척들은 고시를 그만두라고 한다”며 “그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 연휴 동안 학원 자습실에서 공부만 할 생각”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연휴 기간 여행을 계획 중인 직장인 김준호(31)씨도 “대학-군대-취업-결혼-자녀로 이어지는 질문 공세를 단순히 애정 어린 관심이라고만 보기에 듣는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다”며 “우리 사회의 문제나 모순들이 명절 잔소리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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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제공




◇조국 임명 논란·반일 이슈…명절 갈등 씨앗 될까 우려

20·30세대에게는 이번 추석 한 가지 더 걱정거리가 생겼다. 최근 불거진 조국 장관 임명, 일본 보이콧 등이 명절 밥상에서의 주요 메뉴로 오를 가능성이 커 정치성향이 다른 부모·조부모와 다툼이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리얼미터에 따르면 20대(51.8%), 30대(62.3%)는 조 장관 임명을 찬성하는 여론이 비교적 많았던 반면 60세 이상(65.4%)은 반대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모(29)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찬반을 두고 할아버지와 논쟁을 벌인 적 있다”면서 “추석 때 조 장관 임명 관련 대화를 나누다 또 한바탕 고성이 오갈까 걱정”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20·30세대에게는 반일 이슈도 피하고 싶은 대화로 꼽힌다. 지난달 일본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 사진을 ‘NO JAPAN’으로 바꿔놓았던 최모(34)씨는 “당시 (사진을 본) 친척들이 불매 운동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비아냥거려 말다툼했다”며 “이번 추석엔 다투지 않기 위해 조심할 생각이지만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가족끼리 오랜만에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격려하는 것이 명절의 취지이기 때문에 민감할 수 있는 취직·결혼·정치적 이슈 등을 이야기할 땐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관심을 표현하기 위해 근황을 묻는데 요즘 세대는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즉 세대 간 소통 방식에 차이가 있다”며 “함께 대화를 나누는 이를 배려하면서 어떤 주제든 본인의 주장을 관철해 상대방 의견을 바꾸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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