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들에게 이런 정신 나간(?) 서한을 보내고도 찬사를 받는 CEO가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다. 그는 지난 4월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실패 없이는 창조나 성공이 불가능하다”며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보더라도 소비자용 로봇 등 신사업을 위한 실험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베이조스는 비슷한 시기에 개발됐지만 성패가 갈린 3D(3차원) 스마트폰 ‘파이어폰’과 AI(인공지능) 스피커 ‘에코’를 예로 들었다. 파이오폰은 3D인식기술로 상품을 찍으면 곧바로 아마존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혁신을 도입했지만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그 결과 2015년 아마존에 1억7000만달러의 손실을 안겼다. 베이조스는 그러나 “파이어폰의 실패를 바탕으로 에코와 ‘알렉사’ 개발 노력을 가속화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좋은 투자를 위해 열심히 하겠지만 좋은 투자가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베이조스가 실패를 이야기하고도 박수를 받는 것은 단지 그가 이미 성공한 CEO라서가 아니다. 실패를 패배가 아닌 혁신과 성공의 자양분으로 여기는 미국의 기업 문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매년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페일콘’(FailCon·실패콘퍼런스)이다. 벤처창업자와 투자자들이 모여 자랑스럽게 실패담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축제 같은 행사다. 행사 때마다 글로벌 IT(정보기술)업계 거물들이 모여 ‘실리콘밸리의 정상회담’으로도 불린다. 2009년부터 시작된 페일콘은 현재 프랑스, 이스라엘 등 세계 10여개 도시에서 열린다.
실패에 관대한 이 같은 기업 문화가 아니었다면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한 아마존은 진작에 공중분해됐을지 모른다. 아마존은 1994년 설립 후 70개 가까운 신규 사업을 시작했고 이중 18개 사업에 실패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다. 과감한 도전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제2벤처붐’이나 ‘혁신성장’은 허상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지난 4일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실패박물관 : 한국특별전’을 위해 내한한 새뮤얼 웨스트 조직심리학 박사 겸 실패박물관 설립자도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선 실패에 좀 더 관용적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중소벤처기업부와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한국판 페일콘 ‘2019 실패박람회’가 열린다. 실패 관련 전시회부터 전문가포럼, 토크콘서트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 행사는 각계각층의 실패경험을 공유하고 사회적 자산으로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루아침에 세상의 가치관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계기가 없이는 변화도 없다. 실패박람회가 이어져 실패를 감수하는 사회적 역동성이 살아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다음 주말, ‘전패위공(轉敗爲功)의 공간’ 광화문 광장에 들러 자신에게, 서로에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실패해도 괜찮아.”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sy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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