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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시선2035] 다들 익숙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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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준영 정치팀 기자


1) 절대 안 했다고 잡아뗀다=141회.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기자간담회를 연 장관 후보자가 기자들에게 내놓은 “모른다”는 취지의 답변 횟수다. 재산 5분의 1(10억원)을 사모펀드에 넣었지만 투자처도, 투자내역도, 심지어 자녀들이 수천만 원을 넣은 사실도 모른 채 펀드 투자처는 관급 공사를 수주하며 절로 굴러갔다. 가는 곳마다 신청도 않은 장학금이 알아서 입금된 딸도 있다. 행하지 않음에도 스스로 그러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이다.

2) 한 증거가 나오면, 별거 아니라고 한다=고교생 딸이 인턴 2주 만에 SCI급 병리학 논문의 제 1저자로 올라 논란이 되자, “제 아이가 영어를 조금 잘하는 편”이라고 해명했다. 청문회장에서 딸의 출생신고는 본인이 아닌 선친이 했다고 말했지만, 3일 후 공개된 딸의 출생신고서 신고인 란엔 ‘부(父)’라고 적혀있었다. 법무부는 “행정 착오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무아지경(無我之境)이다.

3) 별것 같으면, 너도 비슷하게 안 했냐며 물고 늘어진다=자녀 부정 입시, 사학재단 비리, 수상한 사모펀드 투자, 위장전입 등 의혹이 터질 때마다 여권과 지지층에선 야당 정치인들 이름이 줄줄이 사탕으로 나왔다. “후보자를 규탄하기 전에 본인들이 짊어지고 있는 각종 비리에 대한 의혹부터 해명하길 바란다”는 논리다. 이를 떠나 놀라운 건 한 사람에게 제기되는 의혹을 만인과 하나씩 꾸준히 공유할 수 있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다.

4) 그것도 안 되면, 꼬리 자르기 한다=가족이 운영하는 학교법인이 수상쩍은 송사 등으로 논란이 되자 수십년간 학교 운영에 관여도 안 했다는 그는 별안간 “학교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사모펀드 의혹이 점점 커지자, 펀드를 소개해준 5촌 조카가 재산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며, 사기 혐의로 고소할지를 검토 중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사기를 당했다는 오명을 들을지언정, 육참골단(肉斬骨斷)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위 순번과 소제(小題)는 “다들 익숙하시지요?”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범죄자들의 변명기법’이라는 어느 트위터 글을 인용했다.

김준영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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