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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노아의 방주 쓴 다산…서학과 유학 사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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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한양대 교수, 인간 정약용 조명한 평전 '파란' 출간

연합뉴스

다산초당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후기 뛰어난 사상가인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에 얽힌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는 천주교 신앙이다.

한국 천주교회를 창설한 이벽은 큰형수 동생이었고, 한국인 첫 영세자인 이승훈은 누나 남편이었다. 형인 정약종은 천주교 교리서 '주교요지'(主敎要旨)를 썼다.

다산이 젊은 시절 천주교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임금이 문신들에게 '홍수'를 제목으로 시를 짓게 하자 다산이 '나아방주',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인용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1791년 진산사건 이후 그가 진정 배교했는지를 두고는 견해가 엇갈린다. 한국학 연구자들은 다산이 남긴 저술을 근거로 서학(西學)을 완전히 버렸다고 주장하지만, 천주교계는 만년에 참회하며 신자로 돌아왔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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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한양대 교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산 정약용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며 저서 '다산 증언첩', '다산의 재발견'을 펴낸 정민 한양대 교수는 다산 평전인 신간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波瀾)'에서 이에 대해 "도 아니면 모, 전부냐 전무냐로 갈라 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1845년부터 21년간 한국에 머문 다블뤼 주교가 다산이 '조선복음전래사'를 저술했고, 세상을 뜨기 직전 종부성사를 받았다고 적은 비망기가 거짓으로 꾸며서 쓴 기록은 아니라고 단정한다. 즉 다산이 노년에 천주교를 믿었다고 추정할 근거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다산이 천주교 신부(神父)였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1786년 이승훈이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를 활용해 임시 신부를 결정했을 때 틀림없이 다산과 정약전이 포함됐다고 역설한다.

문제는 다산이 쓴 글에 이러한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산은 천주교와 관련된 인물이나 내용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거나 외면하는 자기 검열을 거쳤다"고 설명한다.

정약용이 천주교를 버린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정조라고 본다. 비유하자면 청년 다산에게는 하느님과 정조라는 두 개의 하늘이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 분석에 따르면 정조는 정약용을 채제공, 이가환과 함께 노론 벽파 견제 세력으로 육성했다. 세 명 중 가장 어린 정약용은 돌격대장 역할을 했다.

그는 "젊은 날의 다산은 정치적 감각이 남달랐다"며 "그는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당시 복잡한 정쟁의 정면에서 부딪쳤다"고 강조한다.

천주와 임금 사이에서 방황한 다산은 표면적으로는 정조를 택했다. 그러나 천주교를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 생각이다. 다산은 회갑을 맞아 쓴 '자찬묘지명'에서 "임금의 총애 입어/ 곁을 모셔 들어갔네/ 그분의 복심 되어/ 아침저녁 가까웠지/ 하늘의 은총 입어/ 못난 마음 활짝 열려"라고 밝혔다. 임금은 정조, 하늘은 천주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다산의 신앙과 배교도 사실이고, 만년의 참회도 거짓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천주학과 유학의 공존, 이 가운데 다산을 배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다산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율배반의 인간이 아니라 그 시대를 전신으로 받아들여 치열하게 진실을 살다 간 영혼"이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서문에 박제화된 성인이 아니라 우리처럼 숨 쉬고 고통받고 고민하던 청춘 정약용을 그리고 싶었다고 적었다. 또 다산이 후대에 일관성 확보를 위해 수정한 자료가 아니라 날것의 글을 분석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산이 본격적으로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인 강진 유배 이후를 다룬 책도 발간할 예정이다. 강진 유배 시절 두 권, 해배(解配) 이후 한 권을 추가해 모두 다섯 권을 펴낼 계획이다.

천년의상상. 1권 364쪽, 2권 384쪽. 각권 1만7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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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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