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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日 패권경쟁 70년…일촉즉발 동아시아의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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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맥그레거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은 다이아몬드 도매상을 터는 강도단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보석을 훔치는 계획이 유출되자 조직원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세 주인공이 서로 총을 겨누고 대치하는 순간을 맞는다.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아수라장이 되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호주 출신 언론인 리처드 맥그레거는 신간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에서 미국, 중국, 일본 3국의 동아시아 패권 경쟁을 이 장면에 비유했다.

초강대국 미국은 동아시아도 '팍스 아메리카나' 질서 아래 두는 전후체제를 유지했으나 점차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 중국은 급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패권을 노린다. 일본은 과거사를 외면한 채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위협하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중국과 갈등관계인 일본이 미국과 밀착하면서 삼자 구도가 양자 구도로 바뀌었지만, 미·일의 밀월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지금은 미국과 일본이 견고한 동맹을 맺고 있지만 미·중·일 삼자 관계는 복잡하고 아슬아슬하다고 진단한다.

20세기 세 나라는 상대를 이용해 역내 외교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다. 서로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세 나라 모두 한나라를 소외시키며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는 등 판도는 여러 번 바뀌었다.

결국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모두 전쟁에 휘말리는 삼각 치킨게임과 같은 불안정한 상황이 됐다.

현재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지국장인 저자는 오랜 기간 도쿄 특파원, 베이징지국장, 상하이지국장 등으로 일한 지역 전문가다.

그는 책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간 동아시아를 둘러싸고 3국이 어떻게 경쟁하고 협력하고 갈등했는지 매우 촘촘하게 묘사한다. 외교 무대의 막전막후를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세세히 전한다.

이를 통해 한·일 갈등과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한 오늘날 동아시아가 직면한 불확실성이 오랜 역사적 배경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취재 경험에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각국 정부 문건, 책과 논문,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더해 세 나라의 패권 경쟁사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

중일 역사 분쟁, 역사 문제를 둘러싼 3국의 셈법,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영토 충돌, 시진핑과 아베의 부상과 새로운 중일 대립,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 변화 등 방대한 문제를 다룬다.

지도자들의 면면과 각국의 정치, 사회적 맥락도 들여다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수정주의와 반중·친미 정책이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영향을 받고 국내 사정도 고려한 결정인 것처럼, 각 지도자의 배경과 내부 정치 상황이 국제 정세에도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동아시아 미래에 불안이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유럽 국가들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인정함으로써 전후 폐허를 딛고 단결할 수 있었다"며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전쟁과 과거사 갈등이 정치, 외교, 정서 어느 면에서도 해결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이 아시아를 조용히 빠져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중국 중심으로 재편된 아시아 질서가 위험한 이유는, 미국의 선택과 상관없이 중국이 기존의 역내 질서를 영원히 뒤바꿀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책에서 저자는 한국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았다. 미·중·일의 경쟁 속에서 한국 정부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등을 일부 설명했지만, 한국을 동아시아 지정학적 구도의 주요 변수로는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중·일의 패권 다툼은 한국의 생존 전략과 직결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특임명예교수는 해제에서 "불행하게도 역사의 인질로 잡혀있는 동아시아가 반목과 대립을 극복하고 평화의 길로 가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후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중국과 한국에게 충분히 사과했다고 믿었고 사과를 받은 양국 또한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이를 표면적으로 받아들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자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문 교수는 "일본이 전후 미국이 강요한 '승자의 정의'에 불만을 제기하고 히로시마를 상기시키면서 '피해자 국가'로 변신하려고 시도하는 한 아시아의 평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디치미디어. 송예슬 옮김. 568쪽. 2만9천원.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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