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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한일 경제전쟁 ‘克日’의 길| 인터뷰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 “반도체 등 대기업은 그나마 대비 여력, 존폐 위기 내몰린 中企 정부가 챙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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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 배제가 발표되기 전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화학·기계·자동차 부품·비금속 등 48개 주요 수입 품목의 경우 지난해 기준 전체 수입액 중 일본 수입액의 비중이 90%가 넘는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4227개 품목 중 일본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품목은 253개, 90% 이상인 품목은 48개로 나타났다. 보고서 발표 후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만난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서로 손해 보는 게임이 시작됐다”며 “이제 냉정하게 판단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원장은 “원상태로의 복귀는 쉽지 않겠지만 서로 갈등이 해결되더라도 국산화 개발은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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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리 산업의 아킬레스건을 공략했는데, 어떤 의도라고 보십니까.

▷아무래도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적 성격이 짙은 게 사실입니다. 그게 직접적인 계기이고, 이번 기회에 한국을 견제해야겠다는 생각이 큰 것이죠. 특히 일본 입장에서 반도체 분야는 자기들이 선도국가였는데 그걸 추월당한 사실에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고, 넓게 보면 반도체를 비롯한 한국 경제가 일본을 추격하는 것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있어요. 정치나 안보 면에서도 한국의 대북·대중 정책이 일본에게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미·일 동맹이 중심인데, 우리의 대북정책을 남·북·중으로 본 것 같아요.

▶국제 여론이 일본에 호락호락하진 않은데요.

▷국제여론도 그렇고 일본 내부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너무 심했다는 건데, 객관적인 여론이 일본에 우호적이지 않더군요. 세계 각국의 해석이 다를 순 있지만 WTO에서 우리의 입장을 보는 시각과 미국 정부나 미국 기업들이 볼 때 일본이 오버한 게 아니냐는 것이죠.

▶일본 기업의 입장도 간간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놓고 보면 일본은 우리와 전혀 달라요. 일본 기업은 정부에 대한 협조관계가 굉장히 크죠. 어쨌거나 정부에서 가자 하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따라갑니다. 당장 협조는 하고 있는데, 비즈니스라는 게 한 3개월 지나면 결과가 나오거든요. 정부에서 의도한 것과 달리 시장 나름대로의 흐름에 따라 거래가 될 거라고 봅니다.

▶일본의 견제에 한일 양국의 기술 격차에 대한 갑론을박도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판단하는 기술 수준의 차이가 다 달라요. 우리 입장에선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분야는 앞서 있지만 화학, 소재, 금속 같은 기초재료는 그렇지 않습니다. 원천기술과 관련된 분야는 솔직히 수십 년 뒤떨어졌어요. 완제품에 대한 경쟁력은 높은데, 부품 소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박용만 대한상의회장이 현장에서 느끼는 기초기술의 격차가 50년이라고 했겠어요.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도 소재부품 국산화에 20년이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걸 국산화하는 건 경제성으로 보나 우리의 실력으로 보나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런 건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양국의 격차를 만든 겁니까.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기술 분야에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00년 넘는 기업이 많아요. 이번에 거론된 소재기업이 대부분 그렇죠. 우리는 1960년대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60~70여 년이에요. 절반이죠. 그 차이가 큽니다. 정보통신이나 전자분야의 기술은 불연속적으로 점프할 수 있는데, 소재나 부품, 특히 소재는 연속적인 축적이 기반이거든요. 그 분야에선 일본과 독일이 강하죠. 독일도 산업혁명 이후 200년 이상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소재 분야의 격차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일본과의 무역 적자폭을 제대로 알게 됐다고도 합니다.

▷그동안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킬레스건 몇 개만 건드리면 어려워진다는 걸 느낀 계기가 된 거죠. 기업 입장에서도 무심코 일본산 제품을 쓴 경향이 있어요. 품질 좋고 가격 싸고 배달받기 쉬우니 안 쓸 이유가 없었던 거죠. 중소기업에서 제품을 개발했지만 대기업이 그냥 편하게 일본제품을 갖다 썼다는 반성도 있고, 가급적이면 국산화가 된 제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효과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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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픈 건 소재보다 장비

▶최근 일본 정부가 한국 수출규제 품목 가운데 하나인 포토레지스트, 반도체 기판에 바르는 감광제의 수출을 예상보다 빨리 허가했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포토레지스트 9개월 치를 확보하면서 일단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소재가 됐습니다. 현재 각 대기업들은 정부와 관계없이 일본 기업 설득에 나서고 있어요. 일본 기업들도 우리에게 팔지 않으면 딱히 팔 곳이 없거든요. 최악의 경우 벨기에나 독일에서 수입할 순 있겠죠. 물론 가격은 좀 비싸질 겁니다. 삼성전자에 물어보니 불화수소의 경우 중국제, 독일제를 갖다 쓸 순 있는데, 200개 공정과정을 일일이 테스트해야 해서 2달 정도 걸린다더군요. 여태 일본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면서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는데 공급처를 바꾸면 품질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사실 독일산 불화수소와 일본산을 비교하면 어떤 게 우수한지 모른답니다. 원료를 못 구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가격이 높아지는 건 별 문제가 안 된다더군요. 반도체 산업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완제품의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삼성전자에서도 큰 피해는 없다고 보고 있어요. 소재에서 가격이 좀 높아지면 완제품 가격이 약 1% 올라가는데,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죠.

▶현장에선 장비에 대한 우려가 있던데요.

▷기업의 입장에선 국산화 개발에 대체공급선을 확보해 난관을 해쳐가겠다고만 할뿐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얘기는 안하고 있어요. 조심스럽지요. 실질적으로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겠다는 3개 품목에 대해 피해가 큰 게 아니고, 그보다 더 아픈 건 반도체 장비예요. 그동안 국산화가 많이 진행됐다고 하지만 여러 이유로 수십 년간 일본산을 많이 썼거든요. 그걸 바꾸면 우리도 손해고 팔지 못하는 일본도 손해죠. 물론 독일이나 여타 대체기업이 있는데 테스트 기간의 낭비, 품질을 맞출 수 있느냐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큽니다. 장기적으로는 국산화하고 대체공급처도 확보해야 하지만 지금은 한일 양국이 서로 손해 보는 게임이 되고 있는 모양새죠.

▶중소기업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일본에 대한 부품, 소재, 장비의 의존도가 훨씬 높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해결방법도 뾰족이 없는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중소기업은 마진을 2~3% 남기면서 일본제품을 써왔는데, 갑자기 독일산으로 바꾸려니 20%이상의 비용이 들거든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대기업들은 자금이나 인력 면에서 몇 년씩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는데, 중소기업은 마지노선에서 비즈니스를 해왔기 때문에 버틸 수가 없어요. 입 밖으로 얘길 못해서 그렇지 공작기계가 규제 대상이 된다면 쓰러지는 곳이 많을 겁니다. 현재 분위기가 그렇게까지 갈 것으로 보이진 않는데, 그럼에도 중소기업 맞춤형 지원이 분명 필요합니다.

▶민간주도로 진행 중인 불매운동은 어떻게 보십니까.

▷불매운동이 결속과 단결의 계기가 되는 건 좋은데 역설적으로 우리의 항공과 여행업계가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고용효과가 굉장히 큰 산업인데 우리로서는 아픈 부분이죠. 일본은 사실 더 아픈 상황입니다. 일본은 수출보다 내수가 더 큰 나라인데, 내수 중에서도 관광의 비중이 크거든요. 한국관광객이 절반 이상 줄면 일본 내수의 타격도 커집니다. 장기화되면 양쪽 국민 모두에게 손해이기 때문에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승자 없는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선 양국 정부 모두 서로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한 상황입니다.

▷정치적인 면이 포함되긴 했는데, 일본이 최근 2건의 수출허가를 생각보다 빨리 내준 걸 보면 과거보다는 불편하지만 서로 수출허가를 빨리 내주면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양국 정상이 만나 화이트리스트 문제를 철회할 수도 있고, 그건 감정적인 문제를 떠나 일종의 행정조치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기업 입장에선 주 52시간 근로제가 큰 걸림돌

▶정부의 지원책 발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 대응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치적으로는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경제적으로는 잘 대처하고 있다고 봅니다. WTO 대응도 잘된 측면이 있고, 부품소재 개발에 1조~2조원을 지원한다든지 R&D사업에 있어 예타를 면제해 주겠다는, 기업들 입장에선 좋아진 측면도 있는 것이죠. R&D사업 자금을 정부에서 지원받는 것도 있고, 노동과 환경규제에 대해 특히 일본과의 부품소재 분야에서 예외를 두겠다는 점이나 주 52시간 근로시간도 유연하게 하겠다는 점, 환경 규제도 유예하겠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기업 입장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노동환경규제의 완화 측면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플러스 요인이죠.

▶주 52시간 근로제가 실제로 혁신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겁니까.

▷기업들 입장에서 애로사항을 꼽으라면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바로 주 52시간이에요. 지난해에는 최저임금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건 기업보다 자영업 문제였거든요. 올해 대기업부터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로제는 지키지 않으면 CEO가 형사 처벌을 받게 돼 있어요. 훨씬 큰 부담이죠. 제조업의 경우는 환경이슈, 화관법과 화평법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고. 그 동안 정부가 친노동,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면서 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는데, 그런 면에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이번 한일 경제전쟁에 대한 미국의 반응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중재에 나설 것 같진 않습니다. 중재를 해서 미국에 실익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분명치 않거든요. 미국 입장에선 일본이 이번 제재를 통해 다시 반도체를 일으키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의 경쟁자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 것이죠. 한국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도움을 준 후 안보와 관련해 방위비를 늘릴 순 있을 겁니다. 관망하는 이유죠. 우선 양국 정치·경제계 원로들이 서로 접촉하면서 양국 정상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결국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키는 시간인 겁니까.

▷시간이 약이죠. 현재 전 세계의 가장 큰 이슈는 미중 무역전쟁이에요. 벌써 1년이 넘었는데, 서로 해결책이 없으면서 장기전으로 가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더 큰 보복이 있을 수 있으니 서로 세게 나갈 수도 없는 거죠. 세계 각국은 여기에 비춰 한일 경제전쟁도 미국과 중국처럼 갈 걸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양국 모두 뜨겁다가 비즈니스가 안 되고 수익이 줄면 정부에 이래선 안 된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어렵다는 불만을 토로하게 됩니다. 서로 냉각기가 지나가면 한순간에 원상태로 복귀하긴 어렵겠지만 장기간에 걸쳐 갈등이 풀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국산화 개발은 진행해야죠. 항상 재발의 가능성이 있잖아요. 우리 입장에선 엄청난 학습효과를 받은 겁니다. 한일 관계는 우리가 어쨌든 부품과 소재를 공급받고 있었기 때문에 국산화하는 게 맞습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해야 합니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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