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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생생확대경] 日 경제보복이 들춰낸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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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수출규제 경제보복 조치 단행

日 정치적 독립 얻었을 뿐 기술·경제적 종속구조 여전

일치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총선 앞둔 여야 진흙탕 공방

매년 가을 과학계 노벨상 타령…말뿐인 기초과학 육성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우선 지리적으로 너무나 가깝다. 도쿄·오사카·후쿠오카·삿포로 등 유명 관광지는 비행기로 모두 1∼2시간 이내다. 일본은 대한민국의 이웃사촌이다. 반면 마음의 거리는 너무 멀다. 유행가 제목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게임에서 ‘한일전’이 열릴 때 모든 국민은 한마음이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상처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없는 태도 탓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 대한민국을 짓누르고 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해 반도체 소재 3대 품목 수출규제 조치와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가) 배제로 경제보복에 나선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 경기둔화, 성장률 하락과 경제활력 부진 등 대내외적인 위기 속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가톤급 악재가 발생한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당하자,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정치적 독립을 이루었을 뿐 경제적 독립은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당장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이제 시작단계이라는 점이다. 물론 한일간 첨예한 갈등은 글로벌 밸류체인(GVC)의 약화 내지는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적지 않다. 그래도 역사전쟁이 전면적인 경제전쟁으로 비화하는 시나리오는 우리에게는 최악이다.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산업화를 이룩했던 대한민국의 성과물이 사상누각에 처할 수 있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에는 참여한다” 국가적 위기 앞에 국민들은 하나가 됐다.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구며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한 회초리를 들었다. 역발상도 강조됐다. 이번 기회에 소재부품 국산화를 이뤄 기술독립과 경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50여년간 일본에 종속된 경제구조를 탈피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백 번 들어도 맞는 말이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도 서로의 잘잘못만을 따지는 여야의 행태는 기이하다못해 참담하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매몰된 또하나의 친일파라는 주장에서부터 정권의 위기탈출을 위한 의도적인 반일 프레임 조장이라는 반박이 맞선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을 앞두고 동인과 서인이 분열하면서 국가적 위기를 가중시켰던 모습이 떠오를 정도다. 모든 건 내년 4월 총선 때문이다.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이념공방이라니 세금이 아깝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기술독립 의지와 관계없이 주객관적 환경이 갖춰졌느냐는 점이다. 냉정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일본에 의존해왔던 소재·부품·장비분야 국산화의 핵심 전제는 기초과학 분야 우수인력 확보다. 사회 현실은 정반대다. 매년 가을 과학분야 노벨상 타령을 해왔지만 그 때뿐이다.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은 이제 ‘연예인’을 넘어 ‘유투버’가 됐다. 자연계 최상위층 고고생의 선택은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20여년 동안 무조건 ‘의대’다. 기초과학 분야 종사자는 상대적으로 처우도 낮고 신분도 불안정하다. 장기적 플랜을 마련해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기술독립은 장밋빛 환상에 불과하다. 말보다는 실천이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여야 정치권의 대오각성과 과학기술입국에 대한 범국민적 동참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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