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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귀국행 강제징용자 수천명 몰사…폭침 직전, 일본인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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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2년 8월 24일 우키시마호 폭침희생자 위령제및 추모식이 부산 수미르공원에서 우키시마호 폭침 한국인 희생자 추모협회 주최로 열렸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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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기쁨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일제 강제징용자들을 태운 배가 의문의 폭발 사고로 침몰한 일이 있었다. 1945년 8월 22일 일본 아오모리(靑森)와 홋카이도(北海道)에 강제징용된 조선인을 태우고 떠나 24일 오후 일본 교토(京都) 마이즈루(舞鶴) 만에서 침몰한 우키시마(浮島)호다. 우키시마호는 정원만 4000명에 이르는 4703t 짜리 일본 해군 수송선이었다.

이 배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장영도(87) 옹은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침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이상한 소문 돌았는데…'부산행 마지막 배'라며 반강제적으로 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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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4일 우키시마호 폭침희생자 위령제및 추모식이 부산 수미르공원에서 열려 전통무용연구가 양태선시의 위령무가 진행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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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옹은 "해방돼서 기쁨에 들뜨고 있던 한국 교포들, 강제 징용자들이 부산으로 배를 태워주겠다는 소식에 환영하며 탔다"며 "나중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안 타려고 했던 사람들도 '이 배가 부산으로 가는 마지막 배'라는 소식에 반강제적으로 배에 탔다"고 떠올렸다.

탑승자 명수에 대해서는 일본 측과 생존자들의 주장이 다르다. 장 옹은 "일본 사람들은 '승선자 명부가 없어서 정확한 명수는 모른다. 다만 폭침에 의해 죽은 사람은 524명'이라고 한다"며 "살아나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승선자는 7000~8000명 정도고, 적어도 2000명 내지 3000명이 죽었다"고 증언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순간, 장 옹은 우연히 갑판 위에 올라갔다가 죽음을 면했다. 장 옹은 "'육지가 보인다'는 소리가 들려서 배 밑에 있던 내가 갑판 위로 올라왔다"며 "육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 큰 배가 두 동강으로 쪼개졌다"고 떠올렸다.



"침몰 직전 구명보트 내려가더니 일본인 태우고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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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4일 우키시마호 폭침희생자 위령제및 추모식이 부산 수미르공원에서 우키시마호 폭침 한국인 희생자 추모협회 주최로 열렸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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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미군이 투하한 기뢰에 의해 배가 폭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 옹은 "기뢰에 의해 배가 파손됐다면 앉아 있던 내가 앞이나 뒤로 넘어져야 한다. 그런데 물로 딱 떨어졌다. 살아남은 사람들 중 물기둥을 봤다는 사람은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도 전했다.

무엇보다 폭발사고가 있기 직전 배에서 구명보트를 타고 빠져나간 일본인들이 있었다는 게 장 옹의 증언이다. 장 옹은 "갑판에서 육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구명보트가 내려갔다. 그 보트에 몇 사람이 타고 보트가 막 모선을 출발하자마자 펑 하고 터졌다"고 주장했다.

사고 직후 바다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갑판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 배가 기울자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배가 파손되면서 등유가 바다에 두껍게 깔렸다. 장 옹은 "바다에 빠진 사람들은 물에 빠졌다가 올라오면 얼굴에 등유가 묻어서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고 사람들이 엉켜서 서로 잡다가 대부분 즉사했다"고 떠올렸다.

장 옹은 아버지의 만류로 바다에 뛰어내리지 않았다. 그러다 일본 고기잡이배에 우연히 타서 살아남았다. 장 옹은 "당시 우키시마호 사건 증언에 대한 보도는 전 일본의 많은 신문, 일본 라디오에 나오지 않았다"며 "제 선친께서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이 사실을 고발해 세상에 알렸다"고 전했다.



우키시마호에 폭발물…일본 정부 기록물에 실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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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위청에서 입수한 일본 해군운송본부의 문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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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침몰 71주년을 맞은 2016년 우키시마호에 폭발물이 실려있었다는 일본 정부의 기록물이 처음 공개됐다. 45년 8월 22일 19시20분 일본 해군 운수본부장이 우키시마호 선장에게 내린 '항행금지 및 폭발물처리'문서다.

문서에는 "1945년 8월 24일 18시 이후 ▶지금 출항 중인 경우 이외는 항행 금지하라 ▶각 폭발물의 처리는 항행 중인 경우 무해한 해상에 투기하라, 항행하지 않은 경우 육지 안전한 곳에 넣어두라(격납)"고 돼 있다.

하지만 우키시마호는 폭발물을 처리하지 않고 같은 날 오후 10시 아오모리 현 오미나토(大湊) 항을 출항했다.

이 문서는 김문길(71) 우키시마호 폭침 한국인희생자추모협회 고문이 2016년 봄 일본인에게서 넘겨받아 그해 8월 8일 부산에서 열린 진상규명 세미나에서 공개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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