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덴마크 작가 그룹 `수퍼플렉스`가 파산한 은행들을 나열한 작품과 비트코인 가치의 등락을 형상화한 푸른 조각 사이에 있다.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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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저축은행은 2011년 12월 27일 신한금융그룹에 인수됐다….'
덴마크 출신 스타 작가그룹 '수퍼플렉스' 개인전 벽에서 국내 은행들이 눈에 띄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파산한 세계은행과 이를 인수·합병한 은행 사명을 적은 작품 '파산한 은행들(Bankrupt Banks)'에서다. 가로 20.4m, 세로 2m에 달하는 검은색 패널에 새긴 빽빽한 흰색 글씨 가운데 2011년 파산한 대전상호저축은행, 전주저축은행도 보였다. 작가들은 파산한 은행 로고를 그린 회화도 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은행들의 쓸쓸한 초상화로 다가온다.
국제갤러리 부산점 개인전에서 만난 야코브 펭거(51)는 "처음에는 패널 1장을 채우겠지 했는데 17장에 달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비에른스티에르네 크리스티안센(50)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파산한 은행 사명을 조사하면서 모든 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 곳곳에서 은행들이 파산했고, 부실 은행들을 인수·합병한 뱅크오브아메리카 규모는 점점 더 커졌다"고 했다.
그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희생된 미군 이름들이 새겨진 워싱턴 베트남전쟁기념관 벽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수퍼플렉스는 금융위기처럼 세계 경제와 정치를 움직이는 권력 시스템을 고찰하는 설치·영상·회화 작품으로 유명하다. 펭거는 "금융은 세상을 읽는 공통 분모이자 개인을 파악하는 수단이다. 어떤 사람을 알고 싶으면 돈을 어디에 쓰는지 신용카드 기록을 보면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마찰이 일어나 금융산업이 병들었고 시스템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수퍼플렉스는 1993년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 동창생인 펭거와 크리스티안센, 라스무스 닐센(50)이 결성한 3인조 그룹이다. 처음 만난 순간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작업하면 훨씬 더 다양한 세상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크리스티안센은 "결과적으로 3명보다 더 거대한 존재 '수퍼플렉스'가 됐다. 다양한 관점이 모여야 사회가 제 기능을 하듯이 갈등은 우리 작업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 설치한 3인용 그네 작품 '하나 둘 셋 스윙!'도 협업 중요성을 반영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세 명의 유연한(flexibile) 생각과 다양한 매체로 대단한(Super) 작품을 만드는 게 이들의 목표다. 광주비엔날레와 국립현대미술관 그룹전 '불온한 데이터' 등에서 작품을 선보여왔으며, 이제야 국내 첫 개인전 '우리도 꿈속에서는 계획이 있다'를 열었다. 금융위기 외에도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급격한 가치변동을 그래프로 형상화한 조각 작품 'Connect With Me(커넥트 위드 미)'를 설치했다.
펭거는 "새로운 경제 방식을 꿈꿀 수 있는 화폐로 부상했지만 어느 순간 탈세 등 불법적인 일에 사용되고 있으니까 또 다른 자본주의 악몽이 아닐까"라며 비트코인에 회의적인 의견을 표했다.
전시장 입구 벽면에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을 상징하는 푸른 유리조각 작품 3개를 붙여놨다. 바닥에서 0.98m 높이에 나란히 부착됐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예측한 2104년 해수면 높이를 반영했다고.
크리스티안센은 "해수면 상승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끊임없이 듣고 있지만 잘 와닿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지난 3월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에도 설치했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레시피로 만든 맥주를 팔아 공유경제의 중요성도 일깨운다. 국제갤러리 부산점 인근에 위치한 프라하993과 협업해 맥주 '프리 비어(FREE BEER)'를 판매한다. 프리(FREE)는 '무료'가 아닌 '자유'를 뜻한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부산 =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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