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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1억원 연봉자, 50만원만 덜 받아도 실패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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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따끈따끈 새책]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무엇이 당신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검색하게 만드는가

머니투데이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베트콩 외에 또 다른 적과 싸워야 했다. 마약 ‘헤로인’이었다. 전쟁 기간 미군 병사 중 35%가 헤로인을 접했고 19%가 중독됐다. 헤로인에 중독되면 재발 확률이 95%다. 미국 정부는 10만 명의 중독자가 귀국 후 벌일 사태에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기우였다. 예상과는 반대로 중독 병사 중 단 5%만 재발했다.

공학자 피터 밀너와 심리학자 제임스 올즈는 쥐들의 뇌에 탐침을 삽입해 ‘쾌락 중추’ 실험을 했다. 이전까지 마약 중독자는 뇌 신경 회로에 이상이 생겨 중독되기 쉬운 조건을 가졌다고 추측했지만, 이 실험으로 적당한 학습이 이행되면 우리 모두 중독자가 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

물질이나 행위 그 자체는 중독성이 없으나 우리가 심리적 문제를 해소할 수단으로 그러한 물질이나 행위를 이용하는 법을 학습할 때 비로소 중독된다는 것이다.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는 증상인 ‘노모포비아’을 지닌 사람 수가 2015년 기준 2억 8000만명이다. 저자는 “선진국 인구의 절반이 뭔가에 중독돼 있고 그 뭔가의 대부분은 행위”라며 “우리는 스마트폰, 이메일, TV, 일, 쇼핑, 운동 등 ‘행위 중독’에 낚여있다”고 말한다.

마약 등 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은 대상만 다를 뿐, 도파민을 분비해 강렬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작동 방식이나 원리는 똑같다. 문제는 행위 중독의 범위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중독 대상이 담배, 알코올, 마약에 국한한 것과 비교하면, 2010년대 그 범위는 한도 끝도 없다.

직장인은 이메일이 도착하면 평균 6초 만에 확인한다. 하루 근무 시간 중 4분의 1을 메일 정리에 쓰고 1시간에 평균 36번 메일을 확인한다. 많은 직장인이 ‘수신함 모두 읽음’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달린다.

문제는 이런 목표 추구가 ‘끝없는 실패 상태에 놓이는 삶’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계정을 만들면 팔로워와 ‘좋아요’ 수에 집착하고 스마트워치를 착용한 순간, 특정한 걸음 수를 걸어야 직성이 풀린다. 마라톤을 4시간에 단 1분 못 미쳐 완주해도, 연봉이 10만 달러에서 500달러만 모자라도 실패한 기분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목표가 점점 쌓여가면 끊임없이 실패를 초래하는 행위 추구에 더욱 깊이 중독되거나 성공하더라도 야심 찬 새 목표를 세우는 일을 계속 되풀이하는 상황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행위 중독을 낳는 요인은 ‘목표’, ‘피드백’, ‘향상’, ‘난이도’, ‘미결’, ‘관계’ 등 6가지다. 어떤 보상도 이익도 없는 이벤트에 사용자 수백만 명이 밤을 새워가며 매달리거나(‘피드백’), 처음엔 신속히 보상하고 나중엔 어렵게 이르는 영악한 게임 룰로 사용자를 중독시키는(‘향상’) 방식도 디지털 시대에 새로 떠오른 중독 요인이다.

‘슈퍼 헥사곤’ 같은 게임은 실패해도 실력이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죽어도 상실감이 들지 않게 설계됐고(‘난이도’), 예고 없는 온라인 쇼핑 사이트의 깜짝 세일 통보에 화면을 끊임없이 새로 고침하게(‘미결’) 하기도 한다.

저자는 물질 중독은 파괴적이라는 것이 뻔히 보이지만 행위 중독은 창조라는 겉모습에 가려 파괴성이 좀체 잘 드러나지 않아 더 위험하다고 경고하면서 우리가 멈추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일깨운다.

행위 중독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많은 임상 치료 프로그램들은 ‘완전한 단절’을 요구하지만, 디지털 기기 사용이 삶의 일부가 된 오늘날, 이는 현실적 대안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억누를수록 더 빠져드는 성향이 있어 단절과 의지력만으로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 가장 효과적인 접근법은 주변 환경을 재구성해 최대한 유혹에 빠질 요소를 제거하는 ‘행위 설계’를 짜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메일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방법, 기상 시각을 어기면 싫어하는 단체에 기부금이 자동 이체되는 자명종, 금지된 행위를 하면 전기 충격을 가하는 웨어러블 기기 등 기발한 해법도 포함된다.

행위의 역이용 해결책도 있다. 바람직한 행위가 재미있으면 사람들은 바람직한 행위를 좇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체험을 게임으로 만드는 기법인 ‘게임화’는 체험 자체가 보상이다. 필립스가 개발한 전동칫솔은 ‘스파클리’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동영상을 보여줘 아이들이 싫증 내지 않는 습관을 유도한다. 뉴욕의 퀘스트 투런이란 학교는 공부를 하나의 게임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미션을 수행하면서 인체구조나 미국독립전쟁 등을 학습한다.

저자는 “오늘날 기술은 중독을 유발하는 쪽으로 훨씬 많이 발전하고 있다”며 “온건한 형태의 중독은 병원 치료보다 삶을 꾸리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해답”이라고 강조한다.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애덤 알터 지음. 홍지수 옮김. 부키 펴냄. 420쪽/2만20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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