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평화의 소녀상’ 등 전시를 중단한 것에 항의해 본전시에 참여한 박찬욱ㆍ임민욱 작가가 4일 작품 자진 철수 의사를 밝혔다. 사진은 두 작가의 전시장에 붙이려던 ‘검열에 반대한다’라고 쓴 행사 소식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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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愛知)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포함된 자체 기획전을 중단한 것에 항의해 본전시에 참여한 다른 한국인 작가들이 작품 철수 의사를 밝혔다.
박찬경은 숲속을 배회하는 인민 군복 차림의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영상·사진 작업인 ‘소년병’(2017)을 출품했다. [사진 아이치 트리엔날레 홈페이지 작가소개 페이지] |
박찬경 작가와 임민욱 작가는 4일 오후 트리엔날레 측과 협의를 거쳐 각각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 마련된 개별 전시공간을 차단해 작품이 보이지 않게 했다. 이미 전시가 나흘간 진행된 까닭에 닫힌 전시공간 앞에는 작가가 작성한 안내문을 부착해 관람객에게 알리기로 했다. 이들은 전날 저녁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가 자체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 그 후’를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무국에 이메일을 보내 전시 중단과 작품 철거 의사를 밝혔다.
두 작가의 요청으로 이날 미술관을 방문한 한국의 미술계 인사는 ‘검열에 반대한다’라고 적힌 트리엔날레 소식지를 각자 전시 공간에 붙이려고 했지만, 트리엔날레 측 거부로 무산됐다. 이 인사는 “두 작가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 작업이 한 시간이라도 관람객에게 보이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라면서 “전시 중간에 이렇게 작품을 빼는 것은 기본적으로 검열”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대미술에서는 도처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전시 측 관계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일본인 작가들도 전시 중단에 항의하는 성명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임민욱은 김정일·박정희 장례식장 장면을 교차편집한 작업에 한복 등 오브제를 추가해 새롭게 변주한 ‘아듀 뉴스’(2019)를 선보였다. |
본전시에서 박 작가는 ‘소년병’(2017)을, 임 작가는 ‘아듀 뉴스’(2019)를 선보였다. ‘소년병’은 숲속을 배회하는 인민 군복 차림의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영상·사진 작업이고, ‘아듀 뉴스’는 김정일·박정희 장례식장 장면을 교차편집한 ‘절반의 가능성’(2012) 작업에 한복 등 오브제를 추가한 작품이다.
아이치 트리엔날레(triennale)는 2010년부터 3년마다 열리는 국제적 미술 행사다. 올해는 4회째인 올해는 쓰다 다이스케(津田大介) 예술감독이 ‘정(情)의 시대’를 주제로 30개국 90명(팀)의 작가를 초청했다.
전시가 중단된 ‘표현의 부자유, 그 후’전은 본전시와 별도로 오카모토 유카(岡本有佳) 출판인 겸 시민운동가 등이 기획한 자체 기획전이다. 한국 작가로는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과 안세홍 작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진 연작인 ‘겹겹’이 출품됐다.
지난 3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 전시장에 놓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일본 시민들이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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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치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는 소녀상 전시에 따른 ‘테러 예고’ ‘협박전화’ 등을 이유로 3일 오후 6시를 기해 ‘표현의 부자유, 그 후’ 기획전 자체를 중단했다. 실행위원장인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 아이치현 지사는 전날 주최 측에 협박전화 등이 쇄도하고 있는 것을 이유로 해당 전시를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오무라 지사는 “테러 예고 같은 전화가 오는 등 불측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며 전시 중지 이유를 발표했다. 그는 “‘철거하지 않으면 가솔린 통을 들고 가겠다’는 팩스가 들어왔다”며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를 제외한) 아이치 트리엔날레 전체가 안심·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가와무라 다카시(河村隆之) 나고야(名古屋)시장도 공개적으로 ‘소녀상 전시 중단’을 주장했으며,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소녀상 전시 문제와 관련해 예술제에 지원하기로 한 보조금의 삭감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편 시인, 수필가, 소설가 등 1000여명이 가입한 문화예술인단체 국제펜(PEN)클럽 일본센터, 일명 ‘일본 펜클럽’이라는 모임은 전날 항의성명을 통해 “창작과 감상 사이에 의사를 소통하는 공간이 없으면 사회의 추진력인 자유의 기풍도 위축된다”라면서 ‘소녀상’ 전시 중단에 반대했다. 일본펜클럽은 “행정당국 인사들의 이 같은 발언은 정치적 압력 그 자체”라며 “헌법 제21조2항이 금지하고 있는 ‘검열’로 이어질 것임을 말할 필요도 없다. 사회의 확충에 기여해 온 예술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 언동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전시 중단을 반대하는 내용의 온라인 서명운동 참여자는 4일 오후 7시 현재 7000명을 돌파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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