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갈등 격화되는 이때, 우리문화 자부심 강조한 '직지' 출간되자마자 순위 진입
설민석의 삼국지, 쉽고 재미있는 설명으로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바짝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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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조정래에 이어 인기 소설가 김진명의 신간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진입했다. 고려의 금속활자를 소재로 한 소설 '직지'다. 김진명은 역사와 국제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글을 써왔다. 이번에도 일본과의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된 상황에서 우리 문화의 자부심을 강조하는 신간을 냈다.
아시아경제는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판매된 책을 대상으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매겼다. 예스24·교보문고·인터파크 등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의 판매량 순위를 참고하되 본지 문화부 기자들의 평점을 더해 종합점수를 집계했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이 지난 집계(7월19일)에 이어 1위를 유지했다. 강력한 도전자가 등장했다. 설민석의 '삼국지'다. 이번 주에는 네 권이 새롭게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는데 설민석의 '삼국지 1권'은 등장하자마자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책은 지난달 17일 출간됐다. 오는 20일 2권이 출간될 예정이어서 한동안 기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설민석은 방송을 통해 어렵고 복잡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설민석의 '삼국지'에도 그의 성향이 반영됐다. 설민석은 100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는 방대한 역사서인 '삼국지'를 많은 사람이 읽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쉽고 재미있게 쓰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방송을 통해 쌓아올린 친숙한 이미지는 책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보통 '삼국지'는 남성들이 선호하는 책으로 알려졌지만 설민석의 '삼국지'는 여성들이 더 많이 사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여성의 구매 비율이 63.9%로 남성을 압도한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의 김현정 담당은 "40대의 구매 비율이 51.5%로 집계됐다"며 "개인 독서뿐만 아니라 방학을 맞아 자녀들을 위해서 구매한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설민석은 쉽고 재미있게 쓴 만큼 자신이 쓴 '삼국지'는 역사서가 아닌 소설이라고 했다. 하지만 교보문고를 비롯해 서점들은 설민석의 책을 인문 서적으로 분류했다.
1, 2위를 차지한 인문 서적은 두 권 다 오래된 이야기를 다룬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은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그리스 아테네와 이탈리아 로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역사학 강사 설민석이 소재로 택한 '삼국지'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오래된 이야기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다.
김진명의 '직지' 역시 오래된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은 1일 출간됐는데 예약 판매만으로 7위에 올랐다. 베르베르의 '죽음'과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이 지난 6월 이후 계속 베스트셀러 순위권을 지키는 가운데 소설의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김진명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는 성향의 소설을 많이 썼다.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박정희 정권기 남한의 핵 개발을 소재로 했다.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로 미국에서 활동한 이휘소 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국도 군사 강국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썼다. 김진명은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국제적 문제로 불거진 직후인 1993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출간했다.
2002년 출간한 '바이 코리아'는 삼성전자가 반도체산업에서 이룬 기적을 말하고자 한 책이었다. '바이 코리아'는 삼성전자가 미국 인텔과 중앙정보국(CIA)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음모를 물리치고 기술력으로 인텔을 따돌린다는 내용을 담았다.
김진명은 중국이 동북공정 야욕을 드러냈을 때는 대하소설 '고구려'의 집필을 시작했다. 그는 고구려 제15대 왕 미천왕부터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 장수왕까지 여섯 왕의 이야기를 다루며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금속활자를 소재로 한 '직지'에서도 그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한다. 김진명은 서문에서 "나는 종종 최고의 목판본 다라니경, 최고의 금속활자 직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꼽는 최고의 언어 한글,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지식 전달의 수단에서 우리가 늘 앞서간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고 썼다. 이어 한국이 인류의 지식혁명에 지속적으로 이바지해왔다는 역사에 긍지를 느낀다며 서문을 마무리했다.
'직지'는 고려의 금속활자가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영향을 줬는가를 추적한다. 역사 문제가 비화돼 무역 분쟁으로 번지며 일본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한 '직지'가 독자들에게서 어떤 반응을 끌어낼지 주목된다.
소설의 강세는 좀 더 이어질 듯하다. 이번 달에 또 다른 인기 소설가 은희경이 신간을 낼 예정이다.
올해 초 강세를 보인 시·에세이는 최근 주춤하다. 이번 베스트셀러 순위에 시·에세이는 한 권만 포함됐다. 하상욱의 '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가 9위에 올랐다.
4위에 오른 '클루지'는 이른바 '유튜버셀러'다. '클루지'는 2011년 절판됐지만 유명 유튜버 '라이프해커 자청'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책으로 유튜브에서 소개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유튜브에 소개된 후 독자들의 구매 문의가 빗발쳤고 출판사가 8년 만에 다시 책을 발간했다. 8위에 오른 '정리하는 뇌'도 라이프해커 자청이 자신의 유튜브에서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지난 집계 당시 3위였으나 순위가 조금 하락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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