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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마음읽기] 그늘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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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을 피해서 그늘 찾아들게 돼

그늘의 미적 활용은 동양적인 것

누군가의 그늘 되는 일 생각하길

중앙일보

문태준 시인


장마전선이 오르내리면서 소나기가 요란스럽게 쏟아지기도 하지만 여름날 정오의 햇빛은 너무나 강렬하다. 그래서 그늘을 찾아 들게 된다. 도심에도 시민들을 위해 그늘막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제일의 그늘은 나무 그늘이 아닐까 한다. 큰 느티나무의 너른 그늘이 보다 좋지만 그늘을 만들지 않는 나무는 없으니 어떤 나무에게든 가서 그 아래에 서면 금방 서늘한 기운을 얻게 된다.

살펴보면 그늘은 곳곳에 있다. 드물어졌지만 참외나 수박을 심은 밭의 밭머리에 세운 원두막은 바람이 드나드는 곳이요, 팔다리를 뻗고 엎드려 목덜미에서 허리께까지 물을 부어 씻어주던 우물가도 더위를 식혀주는 곳이다. 밤이면 마당의 평상도 열대야를 이기는 그늘의 장소이다. 처마 끝에 덧붙이는 좁은 지붕도 그늘이 생기는 곳이다. 솟구쳤다 직하로 떨어지는 분수도 한낮에는 청량함을 더해주니 그늘이라 할 만하다. 계곡과 계곡물, 해변과 파라솔도 여름날의 그늘이다.

『그늘에 대하여』라는 산문집을 쓴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그늘을 ‘음예(陰翳)’라고 표현하면서 그늘의 의미를 각별하게 부각시킨다. 동양의 미(美)가 “가라앉아 그늘진 것”, “흐릿함을 띤 빛”, 한결같이 밝은 것 보다는 좀 더 어두운 온화함에 있다고 말한다. 또한 동양인의 생활에는 그늘의 활용이 특징적이라며 중국 옥의 묘하게 살짝 흐린 느낌, 차양이 만드는 응달, 닥나무로 만들어 흰 종이와는 빛깔이 사뭇 다른 봉서지(奉書紙)의 광택, 등불과 촛불의 괴이한 빛 등을 그 예로 든다. 그늘의 “으스스한 고요함”과 그 응용을 동양 문화만의 신비한 특징으로 꼽는다.

“세상의 사람들을 위해 그늘이 되리라.”는 말은 『임제록』에 등장한다. 한여름에 나무의 그늘이 시원함을 선사하듯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이 다짐은 그늘의 종교적 의미를 보여준다. 『숫타니파타』에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다 행복하라. 마치 어머니가 외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무한한 자비심을 가져라.”라고 이른 대목과 그 뜻이 대동소이하다.

아닌 게 아니라 허겁지겁 그늘을 찾다보면 누군가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 적이 얼마나 있었나를 생각해보게 된다. 막말을 하지 않았는지, 열불이 나게 하지 않았는지, 새로운 근심거리를 만들지 않았는지,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않았는지, 얼마나 친절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가르주나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따라/ 흙과 물과 바람과 노래와 숲이 그런 것처럼/ 아무런 방해 없이 언제나 그들을 위한/ 기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라고 노래했는데, 내가 혹은 내가 한 행위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기쁨을 만들었는지, 그늘을 만들어 산뜻함과 후련함을 주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나무 그늘에 들어갈 때마다 그늘이 그냥 쉽게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목의 시간을 지나, 새잎이 트고, 신록을 사방으로 펼친 연후에야 그늘은 만들어진다. 시간이 쌓여서 그늘은 깊어진다. 마치 물이 쌓여서 배를 띄우듯이. 구름이 모여서 강우를 만들듯이. 행위가 쌓여서 신뢰를 얻듯이. 시간이 쌓여서 그늘이 만들어진 만큼 그늘도 하나의 두꺼운 지층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무 그늘 내부로 들어갈수록 그늘은 짙어지고 쾌적함은 커지게 된다.

자신에게도 그늘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무거운 걱정의 돌에 마음이 눌려 있을 때에는 상쾌한 것을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구름이 걷힌 청산처럼 자신을 여길 일이다. 나는 요즘 무더위를 견디며 겨울 눈밭을 생각함으로써 내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얼마 전 황학주 시인이 쓴 ‘사랑은 조랑말처럼 눈밭에’라는 제목의 시를 읽었는데, 그 시의 “지난 여름밤의 조랑말자리가/ 희미하게 박혀서 웃고 있는 눈밭”이라는 시구를 때때로 중얼중얼하는 것이다. 이 시구는 읽을수록 맛이 좋다. 여름밤에 조랑말이 지나가며 물렁물렁한 땅에 움푹 찍어놓은 그 발자국 위에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어느덧 겨울이 되었을 것인데, 어느 날 눈이 내리고 쌓여 조랑말의 발자국 자리에도 눈이 내렸을 것인데, 시인은 희미하게 흰 빛인 그것을 엷은 웃음으로 이해한 것일 텐데, 나는 이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문득 그늘에 들어서는 것만 같은 것이다.

여름은 우레와 폭우를 데리고 와 요란하게 우리의 일상을 지나갈 것이고, 그보다 훨씬 잦게 폭염과 열대야를 몰고 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늘을 생필품처럼 여기겠지만, 그러할 때에도 그늘의 보다 큰 의미를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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