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 (38)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실사화한 영화가 큰 인기다. 나는 아이를 기르느라 아직 실사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알리딘 애니메이션의 오랜 팬이다. [사진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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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알라딘 봤어?"라는 질문을 꽤 많이 받았다. 월트 디즈니의 1992년작 애니메이션을 말하는 거라면 수차례 봤다. 하지만 2019년 가이 리치 감독의 손을 통해 재탄생한 실사판을 말하는 거라면, 애석하게도 보지 못했다. 보고 싶은 마음은 양탄자 같은데 갓난아기를 기르고 있어 극장 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국의 갓난아기를 둔 부모들, 모두 파이팅이다.
신작은 보지 못했으나 필자는 오래된 원작 '알라딘' 의 팬이다. 그 작품의 어떤 면을 특히 좋아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전부 다'라는 다소 성의 없어 보이는 답변을 드릴 수밖에 없어 민망한데, 이 답변은 적어도 거짓은 아니다. 디즈니의 간판 애니메이션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힘 있는 이야기, 매력적인 캐릭터, 황홀한 음악 등 온갖 좋은 요소들이 모인 수작 중의 수작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를 흥행성적에서 찾을 수 있다. 알라딘 1편은 개봉 당시 미국 박스오피스 전체 1위에 올랐고 전 세계적으로 5억불을 벌어들였으며 영국의 '채널4'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만화 8위에 올랐다. 과연 이 작품이 사람들을 매혹한 비결은 무엇일까?
모두 알고 계신 '알라딘' 1편은 이런 내용이다. 부모 없이 자란 알라딘은 좀도둑질하며 살아가지만, 심성은 깨끗한 청년이다. 그는 어느 날 궁궐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고 가출한 자스민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알라딘은 곤혹을 치르고 있는 자스민을 도와 위기로부터 탈출시키고 둘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러는 사이 궁궐에서는 왕의 심복인 마법사 자파가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다. 자파는 알라딘을 이용해 램프를 손에 넣은 뒤 그것을 이용해 왕권을 찬탈하려 한다. 하지만 알라딘의 단짝인 원숭이 아부의 기지로 램프는 다시 알라딘의 손에 들어온다. 그리고 알라딘 일행은 쿠데타를 저지하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환상적인 모험을 시작하는데…
가난한 청년 알라딘은 가출한 공주 자스민과 사랑에 빠진다. 악인이 나타나 훼방을 놓는 위기도 친구들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온다. 지니는 영화에서 내내 알라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사진 영화 '알라딘(1992)' 스틸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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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야기,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지셨을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란 게 대개 주인공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성장하여 악당을 물리친 뒤 사랑을 쟁취한다는 이야기이니까. 말하자면 '성장' '권선징악' '백년해로'의 키워드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알라딘, 여기에 한 가지 키워드를 추가했다. 바로 ‘치유’다. 그 힘은 알라딘과 지니의 우정에서 온다.
후반부, 둘의 포옹신이 얼마나 가슴 저릿하던지! 커다란 품으로 알라딘을 끌어안는 지니의 표정을 보면 필자는 지금도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강력하고 거대한 어떤 존재로부터 뜨거운 포옹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오늘은 이렇게 독자를 끌어 안아주는 시를 한 편 준비했다. '엄마 생각나는 시'들을 쓴다고 알려진 이정록 시인의 작품이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 의자 전문
이정록의 시 '의자'에는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겼다. [사진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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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그런데 이 어머니의 말씀이 보통이 아니다. 말투는 뭉근한데 내용은 해학적이랄까. 조금 헐렁해 보이는 충청 방언 속에 담긴 삶의 지혜가 촌철살인인지라 놀랍고 반갑다. 무엇보다 모자간의 사랑, 부자간의 사랑을 넘어 참외와 호박을 포함해 모든 산 것들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고 있는 시라 읽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흡족했다.
시인 이정록은 1964년 충청남도에서 태어나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그는 쉽게 쓰고, 충청 방언으로 쓰고, 따뜻하게 쓰고, 왕성하게 쓴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글을 통해 유추해보는 그의 인상은 '소박하다'이다. 등단작의 제목도 소박하게 농부일기다. 그의 시 중에는 고향인 농촌을 그리는 작품이 유독 많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이정록의 시 세계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소설가 한창훈은 이를 두고 "(그에게 있어 어머니는) 시의 출발점이고 창작과정이며 도달점이다"라고 한 바 있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시인, 어머니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은 듯한 시들을 모아 『어머니학교(2012)』라는 시집까지 냈다.
『어머니학교』, 이정록 지음. |
또 최근에 발간한 산문집의 책날개에도 어김없이 어머니와 찍은 사진을 실었다. 한 사람의 인생관이 그의 어머니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 시인의 경우 어머니 사랑이 참 유별나다. 짐작건대 그에게는 '고향' '농촌' '어머니'가 전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기왕 '알라딘' 얘기로 시작했으니 같은 주제로 글을 마치자. 나는 램프의 요정 지니가 상징하는 것이 다름 아닌 이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부르면 등장하는 존재, 위험에서 구출해주는 존재,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로서의 어머니 말이다. 부모 없이 자란 알라딘에게 지니는 정서적 든든함이다. 알라딘이 지니의 넓은 가슴에 안길 때, 나는 어머니의 거대한 품에 자신을 맡기는 작고 어린 영혼을 본다.
문득 옆에서 자는 어린 딸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 아이에게도 이런 류의 따스함을 알려주고 싶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팔을 벌려 서로를 안아주자고, 그러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가르치듯이 말해봤자 듣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예술작품이 존재한다. 실은 모두가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을 갖추게 만들어주는 작품, '알라딘'이나, 이정록의 시 같은 작품들 말이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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