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LA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파란색 자전거복을 입고 참석한 기효신(왼쪽), 나도훈(가운데), 이하얀씨(오른쪽). 트리플A 프로젝트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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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역사는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돌아왔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과거사 문제’가 ‘한일 관계’를 망쳤다고 말한다. 복잡한 경제·외교 논리는 ‘역사 문제’를 ‘순진한 주장’으로 만든다. 비극적 역사는 이성을 뽐낼 ‘기회’가 됐다. 공감은 없다. 이들에게 100여년 전 비극은 내가 겪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이해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복잡한 논리보다 단순한 본질이 역사를 움직였다. 그렇기에 “잘못을 했으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을 ‘순진하다’고만 할 수 없다.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이들의 용기가 역사를 바꿔왔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9일부터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 중인 기효신(24), 나도훈(26), 이하얀(27)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대학생이거나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다. 미국 LA에서 출발한 이들은 7일 현재(미국시간) 애리조나 주를 지나고 있다. 여정은 90일 동안 6600km를 달려 뉴욕에서 끝이 난다. 자전거로 이동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알리는 것이 목표다. 이들의 횡단에는 TripleA Project(트리플A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트리플A라는 이름은 영어 단어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첫 번째 A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 및 피해 할머니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의미의 Admit(인정하다), 두 번째 A는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에게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는 Apologize(사과하다), 마지막 A는 할머님들의 혼과 마음을 안고 동행한다는 의미의 Accompany(동행하다)다.
지난달 29일 미국 글렌데일시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나도훈, 기효신, 이하얀씨(왼쪽부터)가 미국 대륙횡단 출정식을 하고 있다. 트리플A 프로젝트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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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A 프로젝트는 5년 전인 2015년, 20대 청년 두 명에 의해 시작됐다. 매해 한 팀을 선발해 미국 횡단을 지원한다. 비용은 인터넷을 통한 공개 후원을 받아 마련한다. 고된 일정이지만 지원자는 매해 늘고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5기로 선발된 이들에게 참여 이유를 물었다.
팀의 대표인 이씨는 “제 할머니는 오직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16살에 결혼하셨다고 했어요. 단순히 역사라고 생각했던 위안부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대학생인 기씨는 종강을 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와 여정을 시작했다. 2016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길거리 모금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48명의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셨는데 지금은 21명 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분들이 계실 때 일본의 사죄와 인정을 받고 싶어 참여했어요”라고 했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한 나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필리핀에도 있다”며 “국제적인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 횡단에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유는 길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숙박은 Warmshower(웜샤워)라는 자전거 동호회 커뮤니티에서 집을 무상으로 빌리거나 이들의 뜻에 공감하는 한인들의 도움을 받는다.
횡단 경로는 5년째 LA, 시카고, 워싱턴, 필라델피아, 뉴욕 등 일본 영사관, 대사관이 있는 곳으로 동일하다. 올해는 여기에 디트로이트가 추가됐다. 평화의 소녀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방문지에서 ‘수요 집회’에 참석하거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진,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 등을 모아 전시회를 연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를 효과적으로 알릴 방법을 고민한 끝에 시각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팜플렛도 준비했다. 이들은 “팜플렛을 건내며 위안부 문제를 설명하면 대부분 깜짝 놀란다”며 “이 문제를 주변에 알리고 돕겠다는 사람도 많아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들의 도전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도 만들고 있다. 위안부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함께 눈물 흘리는 사람’, ‘자신의 집을 숙소로 내준 사람’, ‘횡단에 동참한 사람’까지 생겼다.
사람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개하고 함께 찍은 사진. 트리플A 프로젝트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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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은 “이 프로젝트가 올해로 끝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진심 어린 사죄를 받는다면 더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경제 보복을 한다고 여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역사 문제에 깨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일각에서는 ‘과거사 문제’로 인한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을 두고 ‘2015 위안부 합의’로 진보했던 역사가 퇴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의 퇴보는 ‘합의의 파기’가 아닌 피해자의 동의 없는 합의문을 ‘용서’라 믿는 기만에 있다. 이해득실을 따진 국가 간 ‘합의’가 역사의 ‘화해’를 만들 수는 없다. 합의 이전에 피해자로부터 정말 ‘용서’받았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그들이 비극적 역사라 쉽게 부르는 사실은 누군가의 실제 경험이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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