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만 사랑 VS 왜 한 사람만 사랑?’
불륜에 대한 문제는 도덕적 잣대를 차치하면 늘 논란거리다. 한 명에게 안주하지 못하고 뻔뻔하게 새로운 이성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이도 있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며 낯선 설렘에 자꾸 흔들리는 마음도 있고 나는 절대 들키지 않을 거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도 있다.
불륜이 부도덕하고 위험한 행위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계속 ‘추구’하고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인간이 다른 이성을 찾게 되는 이유와 불륜의 실체를 뇌 과학과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찾는다. 이런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불륜은 내 문제가 아니라 뇌 문제’라고 판단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래도 ‘뇌’는 상당한 역할을 담당한다. 프레리들쥐는 인간과 더불어 일부일처를 고수하는 대표적 동물이다. 이들의 성적 행동은 아르기닌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바소프레신은 상대에 대한 친절, 애정, 책임감을 불러일으킨다.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바소프레신 수용성이 높으면 일부일처를 추구하는 정숙 성향을 띠고, 낮으면 다처다부 불륜 성향을 띤다. 이 호르몬의 수용성을 낮추는 불륜형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대체로 파트너에 불만이 많고 남에게 친절하지 않으며 이기적이다. 이혼율과 미혼율도 높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정숙형과 불륜형의 비율이 대략 반반이라는 것이다.
뇌 구조도 우리의 일탈을 부추긴다. 안와전두피질과 복내측 전전두피질이라는 뇌 부위는 사회적 제재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야기하고 상식적 윤리관과 선악 판단을 담당한다. 이 부위의 기능이 약해지면 사회성이 떨어지고 성적으로 분방해지기 쉽다. 이 부위는 특히 알코올에 약하다. 술김에 하룻밤 실수를 저지는 과학적 근거가 여기에 있다.
‘불륜 기질’에는 유전자와 뇌처럼 선천적인 요인도 있지만, ‘애착 유형’이라는 후천적 요인도 작용한다.
애착의 3가지 유형 중 ‘안정형’은 일부일처를 추구하는 편이다. ‘회피형’의 경우 연애, 섹스, 결혼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특정인과 깊은 관계를 쌓기보다 여럿과 가벼운 관계를 추구하는 경향이 높아 양다리, 문어발 연애는 물론 불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불안형’은 타인에게 기대하는 의존적 성향으로,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 애정을 주는 상대(기혼자라도)가 나타나면 흠뻑 빠지기 쉽다.
애착 유형은 유아기에 부모로부터 얼마나 애정과 관심을 받고 자랐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를테면 아이가 엄마의 따뜻한 품 안에 안길 때 옥시토신이 활발하게 분비되는데,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애착을 높이고 불안과 긴장을 완화한다.
불륜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와 비난이 거센 것도 뇌 과학으로 설명된다. 공동체를 지키려는 이타심과 ‘부러우면 지는’ 일종의 질투심 뒤에 SS형 세로토닌 수송체 유전자가 불륜에 대한 배척 경향을 높인다는 것이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안정을 얻기 위해 옥시토신에 의지하는데, 옥시토신은 질투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98%가 이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보고됐다.
미국의 인류학자 조지 피터 머독의 연구에 따르면 일부일처제는 전 세계 238개 인간 공동체 중에서 단 43개뿐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전체 포유류 중 3~5%만이 하나의 짝과 함께한다. 생물이 이처럼 다양한 번식 시스템을 가진 것은 그런 편이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 장점에도 왜 일부일처가 중요한 사회적 제도로 자리잡았을까. 워털루대 응용수학 크리스 바우흐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보면, 인류가 수렵 채집 생활에 적합한 30명 이하의 소규모 집단을 이룰 땐 난혼으로 성병이 발생해도 큰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농경에 유리한 300명 이상의 대집단을 이뤄 정착 생활을 할 땐 성병으로 출생률이 심각하게 낮아지는 타격을 입었다. 결국 같은 상대와 평생 백년해로하는 편이 공중위생적 관점에서 집단 유지에 유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연애와 결혼, 가족 형태가 21세기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연애를 거부하는 ‘초식화’,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 ‘졸혼’과 ‘돌싱’ 등 다양한 관계에 따른 새로운 가치관의 해석이 필요한 시대에 진입했다. 혼외 자녀를 인정해 저출산 문제를 극복한 프랑스처럼 불륜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새로운 사회적 관점에서 살피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연애와 결혼, 생식을 하나의 흐름으로 여기는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일부일처제에 적합하지 않은 뇌와 유전자를 타고나는 한, 불륜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람난 유전자=나카노 노부코 지음. 이영미 옮김. 부키 펴냄. 220쪽/1만40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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