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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아렌트 관점에서 영화 ‘기생충’ 속 인물은 모두 ‘무사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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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펴낸 철학자 이진우

경향신문

지난 17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는 최근 출간한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형성하고 개진할 수 있는 문화가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의 최고 덕목”이라고 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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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63)는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1980년대 한나 아렌트(1906~1975)에 매료됐다. 한국이 군부독재에 놓인 시절, ‘철학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유학생 이진우를 고뇌하게 하던 때다.

“한 세미나에서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다루는데 개안이 되는 것처럼,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아렌트는 “가장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자유의 빛을 발견하려고 전체주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같았다.

거대 자본주의에 기식해 살며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면 같아

한국의 국정농단과 ‘촛불혁명’

민주주의 실현이 끝 아니라는

‘악의 평범성’ 을 돌아보게 해

일상서 멈춰 생각하고 질문을

의사표현, 존엄 지키기의 시작


아렌트는 독일 출생의 유대인으로 나치 전체주의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십수년을 무국적자로 떠돌다 미국으로 망명하면서도, 끊임없이 전체주의와 자유를 사유했다. 유대인 학살 실무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지켜본 뒤엔 무사유, 즉 생각하지 않는 것이 곧 ‘악’이라고 일갈했다. ‘악의 평범성’이라고 이름 붙은 개념이다.

아렌트의 철학을 압축한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사진)를 출간한 이 교수를 지난 17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부제는 ‘사유하고 판단하지 않는 시민에게 정치적 자유는 없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질문하면서,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아렌트를 통해 정치철학적 질문을 사유하고자 펴낸 책이다.

이 교수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이후 아렌트의 사유가 더 주목받는 데 대해 “한국적 특수성도 있고,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고 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도 전체주의는 강한 유혹의 형태로 생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체주의의 시대는 저물었다. 그럼에도 21세기 신권위주의 ‘스트롱맨’들의 등장은 아렌트가 말한 ‘강한 유혹’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합리적 절차에 의해 선출됐지만 민주주의를 억압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한국에선 두말할 나위 없이 ‘촛불혁명’과 국정농단이 ‘악의 평범성’을 돌아보게 했죠. 제도적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됐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이 끊임없이 아렌트를 불러오는 겁니다. 사회 양극화, 빈부의 격차, 잉여존재의 대량 출현 등 자본주의적인 문제를 푸는 데도 아렌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는 아렌트의 핵심 개념인 ‘악의 평범성’을 설명하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이야기를 꺼냈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유하지 않는 사람’이다. 지상과 반지하, 지하 밀실이라는 수직구조로 표현되는 영화 속 배경도 ‘사유가 부재한 공간’으로 풀이했다.

경향신문

“극중 기택(송강호)의 가족들은 여러 수를 내고 이성을 사용하지만, 이는 ‘사유’와는 다릅니다. 아렌트가 말하는 ‘사유’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스스로 찾는다는 겁니다. 기택이 말하는 ‘무계획’은 근본적으로 사유의 동기마저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죠. ‘심플하다’고 표현되는 연교(조여정) 역시 타인의 말에 좌우되는,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수직적 구조로 여러 인물이 나오지만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에 기식해, 사유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면에서는 다 같습니다.”

그는 특히 ‘악의 평범성’을 “우리 안에 누구나 아이히만을 한 명씩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오해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본성이나, ‘체제의 톱니바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로만 돌리면 무사유가 불러오는 ‘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장 직장 내 상급자에게 쉽게 이의제기를 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 교수는 “어렵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며 “일상에서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말할 줄 아는 데에서부터 존엄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 시작된다”고 했다. “잠시 일상에서 멈춰서 생각하고,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하지 않으면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왜 그래야 하지? 과연 이게 맞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검토한다는 것은 짚고 갈 난간이 없는 어려운 길, ‘난간 없는 사유’의 길이지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형성하고 개진할 수 있는 것은 아렌트가 생각하는 정치의 핵심과도 연결된다. 아렌트는 평등한 사람들이 공적인 논쟁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비지배’의 정치 형태를 꿈꿨다.

“다양한 의견이 논증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공통감각’이 형성됩니다. 만장일치가 아니고요. 촛불혁명 역시 ‘공통의 감각’이 작동한 예입니다. 다원성을 생각할 때 아렌트가 말한 ‘아모르 문디(Amor Mundi)’를 떠올립니다. 라틴어로 세계애입니다. 내가 내 삶을 시작할 수 없게 하는 전체주의를 겪고도 다양한 사람이 사는 세계를 사랑하자는 희망을 말한 겁니다.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은 아렌트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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