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전도사 김군자·노래하는 박옥선·항상 분주한 강일출 할머니
나눔의집 20년의 기록 영상
이옥선 할머니 내레이션으로 소소한 행복, 담담하게 담아
영화 속 30여명, 이젠 4명만
<에움길>의 한장면. 왼쪽은 2017년 세상을 떠난 김군자 할머니, 오른쪽은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이옥선 할머니. 누미아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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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활을 담은 다큐영화 <에움길>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영화가 끝난 뒤 이옥선 할머니(92)와 이승현 감독(30),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58)이 간담회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났다. 영화와 관련된 질문과 대답이 오간 뒤 주최 측은 간담회를 마무리 짓기 위해 이옥선 할머니에게 끝인사를 부탁했다. “영화 많이 봐 주세요” 정도의 의례적인 말이 나올 차례였다.
이 할머니는 처음에는 “할 말이 뭐가 있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영화를 함께 보고 간담회에도 참석한 터라 체력이 거의 떨어질 시간이었다. 안신권 소장이 “간단하게 인사만 해주시면 된다”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잠시 망설이던 이 할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15살이었다. 부산 밖으로는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15살짜리 어린애였다.” 할머니는 길에서 납치돼 위안부로 끌려갔던 1942년 상황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며 “세상에 어떤 부모가 그런 곳으로 자식을 보내나. 돈벌어 오라고 보내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극장 안은 숙연해졌다. 이 할머니는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건 공식 사죄와 공식 배상이다. 일본은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게 왜 거짓인가. 그렇게 당했으니 그렇게 말하는 거다. 꼭 일본에게 사죄를 받아야 한다”며 긴 인사를 마쳤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에움길>은 ‘위안부’로 불리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20년간 모습을 담담히 보여준다. 이승현 감독은 2016년 개봉한 영화 <귀향>에 일본군으로 출연했던 배우다. 저예산 영화인 <귀향>에서 스태프로도 일하면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접했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감독은 “나눔의집에 있는 할머니들 기록영상물을 몇 개 봤는데, 할머니들의 20년 전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정겹고, 활력이 넘쳤다”며 “무거운 역사를 내려놓은 할머니들의 일상, 행복 등을 담으려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에움길>에는 할머니들의 2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모습이 담겼다. 나눔의집이 보관하고 있던 테이프와 CD 등 영상 자료 1600여점을 모두 보고 영화로 쓸 영상을 골랐다. 여기에 이옥선 할머니가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옥선 할머니 외에도 ‘행복전도사’ 김군자 할머니, ‘노래는 잘 못하지만 부르기 좋아하는’ 박옥선 할머니, ‘항상 분주한’ 강일출 할머니, ‘누구보다 용감하고 말 잘하는’ 이용수 할머니 등 30여명이 등장한다.
할머니들의 일상은 별다를 것이 없다. 흥이 나면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봄나들이를 나가서는 꽃을 보고 소녀처럼 좋아한다. 정치적 상황이 할머니들의 일상을 흔들어 놓기도 하지만, 금세 다시 돌아온다.
할머니들의 기록을 정리한 것만으로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영화다. 안신권 소장은 “영화에 등장하는 30여명 할머니 중 현재 살아계신 분은 4명뿐”이라며 “투쟁적인 할머니들의 모습이 아닌 일상을 녹여냈다. 특별하게 살아온 한 여성의 삶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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