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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의 샌프란시스코 책갈피]딸의 연기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아버지…딸의 삶을 동경했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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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배우가 되짚어본 ‘가족의 기억’

경향신문

케이트 멀그루의 자전적 회고록

< How to Forget: A Daughter‘s Memoir>


미국의 배우 케이트 멀그루의 두번째 책 <How to Forget: A Daughter’s Memoir>가 지난 5월 출간됐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그의 첫번째 자전적 회고록 <Born with Teeth> 이후 다음 책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책이다.

케이트 멀그루는 현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서 주방장 ‘레드’로 활약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1990년대 <스타트렉:보이저> 시리즈에서 최초의 여성 함장 캐트린 제인웨이로 열연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신간에서 케이트는 투병하며 생의 마지막을 살아가는 부모 곁에서 함께한 시간들을 수려한 글 솜씨로 담아냈다. 급성 폐암을 선고받고 모든 치료를 거부한 아버지, 알츠하이머로 투병생활하며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 그들을 돌보기 위해 케이트는 고향 아이오와주로 돌아간다. 2년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떠나보내는 상실의 과정에서 그는 부모와 쌓았던 평생의 기억들을 되짚어본다.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냉철하게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두 사람의 인생을 반추한다.

케이트는 가족들의 숨겨진 이야기도 솔직하고 담담히 써내려 간다. 아버지는 술과 파티를 사랑했고 가족들에게 무심했던, 보수적인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 신자였다. TV에 나온 딸의 연기를 평생 한번도 보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그에 대한 케이트의 쓸쓸한 그리움이 여기저기에서 묻어난다. 그를 더 잘 알지 못해서 더 사랑할 수 있었다는 케이트의 고백에서 어쩌면 그만큼 외로웠을 아버지의 지난날들이 애틋하다.

경향신문

어머니는 뉴욕 맨해튼 근교 부유한 동네에서 예술가를 꿈꾸며 자란 유쾌하고 교양있는 여성이었다. 어머니는 미 중서부 아이오와주 출신 남성을 만나 여덟 명의 아이들을 낳고 키워냈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이 남아있는 뉴욕을 항상 그리워했다고 한다. 열일곱 살에 배우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 케이트와 그런 딸의 삶을 동경했던 엄마. 같은 열망을 품었던 두 여인이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살아오다 작은 고향 마을 더뷰크에서 재회한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사랑했고 어쩌면 몰랐으면 좋았을 비밀까지 나눈 어머니가 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창백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케이트의 글을 읽으며 이제 노년의 삶을 살고 계신 나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나도 열여섯 살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에 가서부터는 경제적으로도 독립했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는 1년에 한번 뵙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아는 부모님의 모습과 부모님과의 추억들은 아마도 나의 어렴풋한 기억과 부모님이 들려주셨던 당신들의 기억일 텐데, 같은 이야기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더 아름답고 뿌옇게 변해간다. 그리고 각자에게 다른 느낌으로 기억된다. 우리 모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원망과 실망, 보람과 기쁨의 근원인 가족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게 아닐까.

김도연 비영리단체 ‘심플스텝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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