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노령견 틈새상품
힘 빠진 노령견 위한 매트·유모차
소화하기 쉬운 사료·영양제 등 인기
인공호흡기·전용 여행상품도 준비
전체 반려견의 10.6%가 10세 이상
병원비 느는데 펫보험도 가입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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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살 몰티즈를 키우는 A씨는 최근 애견미용숍에 갔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노령견이라는 이유에서다. A씨는 반려견이 열 살치고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용숍에서는 동물병원에 가서 미용 서비스를 받으라며 거절했다. 반려견의 나이가 많을수록 피부가 얇고 제대로 서 있지 못해 미용사가 털을 깎다가 자칫 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미용숍의 사정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반려견이 나이 들었다고 예쁘게 관리까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 서러웠다”고 말했다.
반려동물도 고령화 시대다. 반려견을 기르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할머니·할아버지에 해당하는 노령견도 늘고 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뼈가 쑤시고 치아가 약해지듯 반려견도 그러하다. 반려동물도 나이가 들수록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고 보험 가입 등에 제한을 받으며, 동시에 전용사료·유모차 등 이들을 위한 상품도 쏟아지고 있다.
◇반려견도 늙으면 서럽다=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에서 지난해 전국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시민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노령견의 기준인 10세 이상의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10.6%를 차지했다. 설문조사만 보면 반려견도 ‘고령화 사회’에 해당하는 셈이다. 같은 조사에서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른 총 기간은 평균 8.9년이었다. 양육기간이 길어지면서 반려견도 덩달아 고령화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나이 든 반려견의 삶은 사람과 사뭇 비슷하다. 당장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면서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 농촌진흥청이 11개 동물병원의 전자 차트를 바탕으로 반려견의 나이를 분석한 결과 10세 이상이 대략 17%를 차지했다. 7세 이상 반려견도 28%로 높았다. 반려견 나이 7세는 사람으로 치면 44~56세의 중년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심장질환·신장질환·부신피질기능항진증·유선종양·자궁축농증·백내장 발생률이 급격히 뛴다고 동물병원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 13세 포메라니안 ‘캔디’를 키우는 최지웅씨는 반려견이 노화로 심장에 물이 차는 심장비대증을 앓고 있어 매주 동물병원을 가고 있다. 최씨는 “한번 병원에 갈 때마다 병원비로 60만원을 낼 뿐만 아니라 12시간 간격으로 약을 먹여야 하는데 가족들이 모두 일을 나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려견을 키우다 도중에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비 부담을 줄여주는 펫 보험마저 대부분 보험회사에서 10세가 넘은 반려견은 신규 가입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고령의 개는 다시 ‘선택’받기도 어렵다. 지난 2017년 비글구조네트워크에 입소한 8세 순이는 1년가량 입양을 기다렸지만 끝내 새로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동물권행동단체 카라의 한 관계자는 “노령견일수록 입양 가능성은 확연히 떨어진다”며 “현재 국내에 노령견을 위한 별도의 시설도 없어 일반 시설에서 다른 반려견들과 함께 보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령견 위한 틈새시장 인기=노령견을 키우는 견주들의 어려움은 새로운 사업의 기회로도 이어진다. 자신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반려견을 위해 주저 없이 지갑을 여는 견주들이 늘면서다. 지난해 7월 노령 반려동물 전문관을 연 쿠팡이 대표적이다. 쿠팡은 전문관에서 노령 반려동물이 소화하기 쉬운 사료와 영양제, 다리 힘이 빠진 노령견을 위한 미끄럼 방지 매트와 쿠션, 산책하기 어려운 반려동물을 위한 반려동물용 유모차 등을 판매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연령별 맞춤용품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쿠팡 측은 귀띔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도 노령견을 위한 상품은 인기다. 휴대용 반려견용 인공호흡기를 개발한 프로텍트바이오는 크라우드펀딩으로 투자를 모집했다가 기대보다 반응이 좋아 깜짝 놀랐다. 목표치를 893%나 초과한 446만원 펀딩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심장질환이 노령견의 흔한 질환인데다 9세 이후부터 발병률이 20% 이상 증가한 데 따른 견주들의 우려를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려동물 동반 택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하이펫츠는 노령견 전용 여행상품 출시를 고민하고 있다. 회사는 16살 코커스패니얼과 함께 마지막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펫 택시를 이용한 손님을 계기로 노령견 전용 동반 여행의 가능성을 봤다. 백윤기 하이펫츠 대표는 “택시를 이용했던 손님은 코커스패니얼이 이미 노화로 시력과 청력을 잃었지만 좋은 곳에 가서 향긋한 냄새라도 맡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며 “노령견은 다른 어린 반려견들과 분리해 여행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하이펫츠는 펫 택시에 이어 반려동물을 동반한 여행 상품, 노령견 전용 여행상품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반려견의 수명이 늘면서 노령견들이 갈 수 있는 곳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전국 2곳의 국립자연휴양림에서 반려동물 동반입장을 시범 운영 중인 산림청은 올해부터 반려동물의 연령제한을 없앴다. 지난해 시범 운영 때만 해도 동반입장이 가능한 반려동물은 10세 이하로 제한적이었다. 산림청 측은 “처음 시범 운영할 때는 숲에 있는 각종 균에 반려견이 감염돼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나이제한을 뒀다”며 “이후 견주와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견들도 많아져 나이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없앴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이희조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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