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질병 분류…2022년 발효
정부, 내달부터 논의 격론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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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보건당국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준비에 나서겠다는 방침이지만 향후 게임업계 등의 반발로 진통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26일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안이 전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WHO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WHO는 2014년부터 게임중독의 질병 등록을 추진했다. WHO는 게임중독을 ‘다른 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일상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생겨도 게임을 계속하거나 오히려 더 하게 되는 경우’로 정의한다. 게임에 대한 통제를 잃은 상황이 1년 이상 지속되면 게임중독이 명확하지만, 증상이 심각하면 이보다 짧은 기간에도 중독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다만 WHO의 이번 개정은 권고안이어서 게임중독을 실제 병으로 규정할지는 개별 국가에서 정하게 된다. ‘한국표준질병·사인코드’(KCD)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려면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계와 게임업체들 간에 다시 논쟁이 촉발될 수 있다. 복지부는 다음달 중 관계부처와 법조계, 게임업계와 의료계 관계자들로 협의체를 마련하고 게임중독의 질병 등록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WHO의 게임중독 질병 등록은 2022년 1월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5년 주기인 KCD의 개정 시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인정되는 것은 일러도 2026년 1월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이 질병으로 등록되면 정부는 정확한 실태를 조사한 뒤, 피해가 심각하면 국가 차원의 질병관리·예방 사업에 나서게 된다. 국회에서는 그 이전에라도 WHO의 결정을 근거로 게임 규제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통계·의학 조사로 기준 마련…모바일 셧다운·중독세 도입하나
사람 잡는 게임중독…‘질병’ 되면 뭐가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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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한 배경엔 세계적인 인터넷·게임 중독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홍콩대 연구에 따르면 게임을 포함한 인터넷 중독 인구는 2014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6%인 4억2000만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경우 2016년 정부 조사에서 성인의 1%가 게임중독으로 나타났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난해 조사에서는 청소년(초등학교 4학년 이상부터 고교생까지) 중 1.8%가 게임중독 위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임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그간 게임에 빠져 가족이나 친지를 살해하는가 하면, 며칠간 게임에 몰두하다 돌연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온라인 아이템을 판매해 돈을 벌던 아버지가 육아로 수입이 줄자 아이를 학대한 뒤 살해해 논란이 됐다.
■ 게임중독, 관리·예방 강화
상담 활동·의료 기관 연계해
‘게임중독’ 관리·예방 강화
게임중독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졌지만, 게임중독에 대한 정의가 정확하지 않고 질병으로 분류되는 것도 아니어서 의학적 조사와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 게임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가 병원에 가도 ‘습관 및 충동 장애’ 등의 질환으로 분류되기에 게임중독 환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힘들었다. 콘텐츠진흥원에서 매년 게임 과몰입 인구를 조사하지만 청소년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라 연구에 한계도 있었다.
이에 따라 WHO는 게임중독 문제를 공중보건학적으로 다루기 위해 2015년부터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 등재를 추진했다. 보건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초안을 다듬었으며, 이번에 총회에서 그 내용을 최종 확정한 것이다.
향후 국내에서도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등록되면 게임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의학적인 도움을 얻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까지는 게임중독을 병으로 인정하지 않아 가정에서는 자녀의 나태함 등에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았다.
홍정익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중독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가려져 있던 부분들을 정확히 들여다보면 필요한 예방과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임중독의 공식 통계 작성이 이뤄지면 정확한 실태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게임중독의 자세한 판정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WHO는 게임중독의 기준으로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해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현상이 1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 등을 들었으나, 단순히 시간만으로 중독 여부를 판단하긴 힘들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독 여부 확인은 게임을 할 때 뇌에서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는지, 도파민이 과도하게 반복적으로 분비돼 신경회로에 이상을 초래하는지 등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국내 게임중독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면 정부 차원의 관리·예방 활동이 강화될 수 있다. 5년마다 세우는 ‘정신질환 종합대책’에서 게임중독 예방 사업의 비중이 커지고, 학교나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통해 상담활동이나 의료기관 연계가 활발해지는 것이다.
■ 예상되는 제도적 변화는?
청소년 이용 제한 ‘셧다운제’
적용 대상·범위 강화할 수도
2011년 도입된 ‘셧다운제’의 범위가 모바일게임까지 넓어질 수 있다. 셧다운제는 온라인 PC게임과 유료 콘솔게임에 한해 0시부터 6시까지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규제다.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에 따른 게임 과몰입 예방 활동도 강화될 수 있다. 게임산업법 12조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게임 과몰입 예방을 위한 전문기관을 설립하고 지원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지난 9일 게임업계와 만난 자리에서 “게임 자체를 과몰입의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속도조절론’을 암시한 바 있다.
아직은 국내에서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등록되기 전이지만 국회에서 이번 WHO 결정을 근거로 게임 규제 법안을 발의할 가능성도 있다. 국회에서 발의될 법안의 내용은 앞서 폐기됐던 법안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2013년 1월 당시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 등이 발의한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 등에는 중독성이 높은 인터넷게임은 최대 매출의 5% 혹은 5억원 이하까지 과징금을 매기는 방안이 포함된 바 있다.
게임사업자에게 연간 매출액의 1% 이하 범위에서 소위 ‘게임중독세’로 불리는 ‘게임중독치유부담금’을 정부가 징수하게 하는 법안도 있었다. 담배나 술 등에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처럼 중독에 따른 치료비를 미리 걷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게임중독세 논의를 하진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WHO 결정으로 정부나 국회에서 이 같은 법안이 다시 발의될 가능성도 있다.
■ 게임업계, 치열한 공방 예고
규제 땐 업계 위축 불보듯
정부 “실태 파악 먼저” 신중
이처럼 게임에 대한 여러 규제들이 예상되기에 게임업계에선 게임중독의 질병 등록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지난해 12월 산학협력단의 ‘게임 과몰입 정책 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 보고서는 셧다운제 시행 당시 게임업계의 피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번 WHO 결정 이후 2023년 2조2064억원, 2024년 3조9467억원, 2025년 5조2004억원의 위축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연 13조원가량이다. 이에 따라 의료계와 게임업계 간 치열한 논리 싸움과 진통이 예상된다.
다만 정부는 WHO 결정이 바로 급격한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홍정익 과장은 “업계에서 우려하는 게임에 대한 규제나 중독 예방사업 등은 게임중독 실태를 우선 파악해야 추진할 수 있다”며 “실태도 모른 채 당장 규제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게임업계 “도입 결사 반대…자유로운 창작자들 제약”
“충분한 연구 데이터 없어
유엔권리협약 박탈 행위”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사용장애 질병 등록 결정에 국내 게임·콘텐츠 업계는 “국내 도입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WHO의 결정에 근거해 국내에서 게임 규제가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게임학회·협회·기관 등 88개 단체로 꾸려진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준비위원회’는 전날 성명서를 내고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지정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식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면담·관계부처 공식 서한 발송 등 국내 도입 반대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들은 “질병코드 지정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31조에 명시된 문화적, 예술적 생활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이며, 미국 정신의학회의 공식 입장과 같이 ‘아직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질병코드 지정으로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권리인 게임을 향유하는 과정에서 죄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며 “게임 개발자들과 콘텐츠 창작자들은 자유로운 창작적 표현에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엔씨소프트, 네오위즈 등 게임업체는 온라인상에서 반대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식 계정에는 ‘#게임은 문화입니다 #질병이 아닙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해당 게시물에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WHO 권고사항을 각 나라가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가 있지 않은 만큼 국내 실정에 맞게 재진단이 필요하다”며 “게임이 정신장애를 유발한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고, 게임중독은 학업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한 증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게임산업 종사자들이 스스로를 담배와 같은 혐오제품을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될까 걱정된다”며 “우수 인력의 이탈은 콘텐츠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행성이 크다고 비판받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업계가 자구책을 마련한 것처럼 문화 콘텐츠를 육성하는 시각에서 자율규제안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분한 연구 데이터 없어
유엔권리협약 박탈 행위”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사용장애 질병 등록 결정에 국내 게임·콘텐츠 업계는 “국내 도입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WHO의 결정에 근거해 국내에서 게임 규제가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게임학회·협회·기관 등 88개 단체로 꾸려진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준비위원회’는 전날 성명서를 내고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지정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식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면담·관계부처 공식 서한 발송 등 국내 도입 반대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들은 “질병코드 지정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31조에 명시된 문화적, 예술적 생활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이며, 미국 정신의학회의 공식 입장과 같이 ‘아직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질병코드 지정으로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권리인 게임을 향유하는 과정에서 죄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며 “게임 개발자들과 콘텐츠 창작자들은 자유로운 창작적 표현에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엔씨소프트, 네오위즈 등 게임업체는 온라인상에서 반대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식 계정에는 ‘#게임은 문화입니다 #질병이 아닙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해당 게시물에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WHO 권고사항을 각 나라가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가 있지 않은 만큼 국내 실정에 맞게 재진단이 필요하다”며 “게임이 정신장애를 유발한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고, 게임중독은 학업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한 증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게임산업 종사자들이 스스로를 담배와 같은 혐오제품을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될까 걱정된다”며 “우수 인력의 이탈은 콘텐츠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행성이 크다고 비판받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업계가 자구책을 마련한 것처럼 문화 콘텐츠를 육성하는 시각에서 자율규제안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하·곽희양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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