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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수사권 조정 현실화 땐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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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수사지휘권 폐지되면 국민의 기본권 침해 우려 커져”

경 “2013년 당시 김학의 영장 번번이 기각돼 수사 차질”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수사 무력화 활용’도 불씨로


“사건을 수사한 3~4개월 동안 (영장에) ‘기각’이 붙은 것만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영장을 기각하고 경찰 수사를 완전히 뒤집어엎은 것은 검찰이다.”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이른바 ‘별장 성접대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의 말이다.

당시 현직 법무부 차관의 성범죄 동영상을 입수해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김 전 차관 등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검찰은 김 전 차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포함해 압수수색, 통신사실 조회, 출국금지 요청 등 모두 10차례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반려했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당시 수사팀 안에서) 영장 없이 수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논의했을 정도”라며 “경찰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도록 방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영장 기각”이라고 말했다.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려진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놓고 검경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다. 검찰은 경찰 수사에 대한 1차적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부여되면 경찰 수사를 통제하기 어렵고 그만큼 시민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검찰의 법률적인 판단 없이 경찰이 임의대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다면 경찰의 부실 수사나 의도적인 사건 덮기를 잡아내기 힘들다고도 지적한다.

경찰은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권 등 경찰 수사 통제 방안이 마련돼 있고, 현재 수사권 조정안은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전제해 검사가 언제든 영장으로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검찰의 1차적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더라도 검사가 영장청구 과정에 개입한다면 수사지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에는 검사의 독점적인 영장청구권이 규정돼 있다. 개헌 사안인지라 수사권 조정 논의에서 빠졌지만, 지난해 청와대가 공개한 대통령 개헌안에도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영장주의의 본질은 강제수사 필요성을 수사 당사자인 수사기관이 아니라 독립된 법관이 공정하게 판단하는 데 있는데, 영장청구의 ‘주체’까지 헌법에 명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검경은 수사권 조정 논의가 이뤄질 때마다 이를 두고 치열하게 맞붙었다. 검찰은 헌법에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삭제하면 경찰의 무분별한 강제수사로 인권침해가 급증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경찰은 강제수사의 핵심 영장청구 권한이 검찰에만 있어 김학의 사건처럼 검찰이 정치논리나 조직보호를 위해 경찰 수사를 무력화한다고 주장해 왔다.

독점적인 영장청구권은 수사지휘권과 결합해 검찰 고위직이나 권력층에 대한 수사를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2016년 ‘스폰서 부장검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스폰서 김모씨의 사기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2016년 5월 김씨와 김형준 부장검사의 의심스러운 거래를 확인해 2차례 계좌추적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모두 반려했고, 김 검사의 비위행위를 대검에 보고한 당일 경찰에 수사 중단 및 사건 송치를 지휘했다. 이듬해 1월 검찰은 김 검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에도 검사가 영장 불청구를 통해 경찰 수사를 무력화하고 ‘제 식구 비위 감추기’를 위해 사건 송치를 지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2012년 ‘김광준 부장검사 뇌물사건’ 때도 경찰은 국내 최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측근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당시 김 검사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영장을 불청구하고 경찰 수사를 중단시킨 뒤 특임검사를 임명해 사건 송치를 지휘했다. 이후 법원에서 징역 7년의 확정판결을 받은 김광준 검사는 한상대 검찰총장이 ‘검사가 경찰에서 조사받는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특임검사를 차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의 수사권 조정안이 그간 논란이 됐던 ‘정치검찰’의 표적 수사나 제 식구 감싸기 등을 막는 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개혁위원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는 “경찰의 확대된 권한에 따른 통제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도 문제지만 검찰개혁이 필요했던 특수수사 등은 그대로 두고 일반 형사사건의 검경 권한만 조정한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에 대한 통제 장치도 필요하지만 반드시 그 통제를 검찰이 해야 할 필요는 없다”면서 “오히려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이 모두 가지고 있는 형사사법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은 최근 임은정 부장검사의 고발로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찰 고위인사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했지만 이들이 경찰 수사에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이 현직 검사를 상대로 수사한 사건 중 음주나 교통사고를 제외하고 검사가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사례는 역사상 단 1건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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