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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매경춘추] 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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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봄에는 더 확실한 봄을 찾아서 남도를 여행하곤 한다. 올해에도 주말을 이용하여 두 번 경장 차림으로 논문 두어 편 챙겨서 다녀왔다. 남도에 가면 따듯한 봄기운에 희망의 기지개를 크게 켜고, 서울의 번잡함을 잠시 잊고 연구계획을 수립하는 데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계절의 별미인 봄향내 그윽한 도다리 쑥국과 고소한 밴댕이구이를 맛보는 건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었다.

귀경하는 길에 섬진강변 매화마을을 지나며 김용택(金龍澤) 시인의 시(詩) '봄날',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를 읊조리며 감상에 젖었던 기억이 엊그제인데 그 화사하던 봄꽃은 스러진 지 오래고, 산천은 이미 초록으로 짙게 물들어간다. 봄날은 어느덧 끝자락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속절없이 가는 봄을 잡지 못하는 애틋한 심사를 김소월(金素月)의 시 '실버들' 구절만큼 잘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실버들 천만사 늘어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 못하나, 이 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봄을 속절없이 보내려니 아쉬움에 감성이 과잉 표출되었나 보다. 그러나 퇴계 이황(李滉) 선생도 때때로 감성에 젖어보라고 하셨다. '사람이 이성만을 중시하고 살아간다면 우리 세상은 인정도 애정도 없는 삭막한 모습이 될 것이며 또 감성만으로 살아간다면 도덕과 질서가 무너지는 세상이 될 것이니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통해 삶을 지혜롭게 운영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계절은 변함없이 오고 가는데, 봄이 간다고 아주 가는 건 아니다. 내년에 다시 돌아온다. 인생의 허무를 논하거나, 인생이 일장춘몽이라고 반성 무드에 젖어 있기보다는 내년에 다시 찾아온다는 희망으로 보고 싶다.

봄을 대범하게 보냈던 옛 시인들 중 내가 좋아하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송춘사(送春詞·봄을 보내는 노래)를 음미한다. '일일인공로(日日人空老) 연년춘갱귀(年年春更歸) 상환유준주(相歡有尊酒) 불용석화비(不用惜花飛)' 날마다 사람은 속절없이 늙어 가고,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오누나, 서로 기쁘게 술잔 마주하고 있으니, 꽃잎 떨어져 날린들 아쉬울 게 무엇인가.

[금종해 대한수학회 회장·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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