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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홍기영칼럼]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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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돌궐(突厥)은 6세기 중반부터 200여년 동안 알타이 산맥 동서를 동시에 다스린 최초의 민족이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초원에 흩어져 살던 유목정권이었다. 열악한 생산 기반과 복잡한 민족 구성은 정치적 갈등에 취약하다. 약탈과 혹독한 세금을 견뎌낼 백성은 없었다. 지배하에 있던 다양한 언어권 주민들이 밖으로 떠나자 돌궐제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돌궐의 흥망은 경제 주체의 이탈을 막아야 생산이 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국내에서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한다.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탈(脫)한국’ 현상이 심해진다. 수출입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 투자자가 해외에 설립한 신규 법인은 1만9617곳에 달했다. 2018년 해외에 설립된 신규 법인은 3540개에 이른다.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연어 프로젝트’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유턴법이 시행된 2014년부터 올해 5월까지 돌아온 기업은 59개에 그쳤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월 13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해 주목을 끌었다. 국내 재벌 총수가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것은 신 회장이 처음이다. 이에 앞서 9일 롯데케미칼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에탄크래커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총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는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 인수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 회장을 초청하는 파격을 보인 것은 미국을 다시 제조업 메카로 부활시키려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을 홍보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냉혹한 글로벌 투자 유치 전쟁에서 리더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는 것 같다”며 신 회장을 환대했다. 신 회장은 추가적인 대미 투자 방침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는 2018년 500억달러에 육박한다. 반면 외국인 국내 직접투자는 급감한다. 1분기 외국인 직접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35.7% 감소하면서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로는 제조업 공동화, 고용 감소가 심각해질 우려가 크다.

게다가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이 가속화한다. ‘노딜’로 끝난 미중 무역협상 여파로 외국인 투자자는 15일까지 5거래일 연속 ‘팔자’ 행진을 이어가며 1조원가량을 순매도했다. 게다가 MSCI지수 개편으로 1조원대 외국인 자금 추가 이탈이 우려된다. 환율 변동성도 확대된다. 원화 매도 공세로 원달러 환율은 15일 장중 1190원에 도달했다. 반도체와 대중 수출 부진 탓에 5개월째 마이너스 수출이 예상된다. 그동안 흑자를 지속하던 경상수지가 7년 만에 처음으로 4월 중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경제의 대외 부문에서 총체적인 경고음이 들리는 것이다.

한국은 기업 투자처로서 매력을 잃었다. 문 닫는 기업이 지천에 널렸다. 기업인은 ‘고난의 길’을 걷는다. 세제상 지원은커녕 고강도 세무조사가 기업을 압박한다. 반(反)기업정서는 여전하다. 고임금에 노동생산성은 하락추세다. 이에 반해 베트남은 한국 기업의 투자 성지(聖地)로 부상했다. 노동 효율성과 규제개혁 덕에 싱가포르에는 외국 자본 유입이 줄을 섰다. 기업인 애국심에 투자를 호소할 때는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주 52시간 근로제 등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기업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피부로 느끼는 성과를 창출하겠다는 헛된 약속이 아니라 기업인 사기를 북돋는 정책을 제대로 펴야 투자가 살아날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 문턱을 확 낮추고 생존의 위기에 처한 기업 현장의 애타는 호소에 정부는 화답해야 할 때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9호 (2019.05.22~2019.05.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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