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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기고] 이스라엘 스타트업 200社, 보스턴에 창업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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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얼마 전 선진 바이오생태계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한 보스턴에서 아일랜드 대기근을 상징하는 동상과 마주쳤다. 1840년대 후반에 발생한 이 기근은 인구 800여 만명 중 1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00만명 이상을 해외로 이주시킨 대참사였다. 당시 아일랜드의 주식인 감자에 역병이 갑작스럽게 발생하였고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유전적 변이를 가진 감자가 없었다는 것이 대기근 발생 요인 중 하나였다. 이처럼 하나의 생물종을 구성하고 있는 개체들 사이에 유전적 변이가 존재하는 '유전자 다양성'은 매우 중요하다. 풍부한 유전자 다양성은 외부적인 환경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종이 여러 세대에 걸쳐 유지될 수 있도록 해준다.

바이오산업도 이러한 유전적 다양성의 법칙을 따른다. 바이오산업이 지속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지식과 인력을 배출하는 대학, 연구기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생겨나는 스타트업, 이들에게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병원, 규제기관, 제약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바이오생태계라고 부른다.

바이오생태계는 참여 주체들이 상호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어 가치 창조 활동이 매우 복잡하며 각 파트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전체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이해 관계자들이 상호 의존하고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통해 선순환 고리를 형성함으로써 진화하고 발전한다. 마지막으로 생태계 내 각 주체들이 기술과 고객 니즈의 변화, 정부 규제,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 외부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서 생태계 내에서 존속한다.

세계에서 바이오생태계가 가장 잘 구축된 곳 중 하나로 보스턴을 들 수 있다. 보스턴에는 하버드대, MIT 등과 같은 세계 최고의 대학은 물론 화이트헤드연구소, 브로드연구소와 같은 연구기관과 매사추세츠종합병원과 같은 연구 중심 병원이 밀집되어 있다. 이들이 배출한 지식과 인재들을 기반으로 500개 이상의 바이오 스타트업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고, 세계 상위 20대 제약기업 중 19개 기업의 연구개발(R&D) 센터가 위치해 있다. 보스턴의 바이오 생태계를 잘 이용하고 있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내수시장이 작고 주변국과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설립 당시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 2016년을 기준으로 창업자 중 적어도 1명이 이스라엘 국민이거나 거주자(미국 이민자 제외)가 본국이 아닌 보스턴에 설립한 바이오·IT 기업이 216개에 이른다. 이들이 2015년에 창출한 경제효과는 181억달러(직접효과 93억달러)로 매사추세츠주 전체 GDP의 3.8%에 해당한다. 이 중 바이오 분야 기업들은 24억2000만달러의 직접 경제효과와 126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필자는 이번 출장에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물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네트워킹하고 가치사슬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가 추구한 해외 자원을 국내에 유치하는 전략으로 한계가 있다. 국내에 유치할 수 있는 자원은 매우 한정되어 있고 그 효과도 크지 않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되기는 했지만 바이오 분야에서 대면 방식 상호 작용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우수한 대학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바이오클러스터가 조성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보스턴을 글로벌 바이오시장으로 나아가는 전략적 통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현지 거점을 구축하여 첨단 연구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보유기술을 마케팅하고, 국내 기업의 현지시장 진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건전한 바이오생태계가 만들어지고 바이오산업이 국가 주력산업으로서 기여할 날이 더 앞당겨질 것으로 믿는다.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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