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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청년예술가들, 대전역 성매매 집결지 어둠을 걷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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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열고 주민과 진심으로 소통…영화제·마켓도 열어

연합뉴스

공방 꾸미는 작가
한 작가가 대전역 주변 성매매 집결지에서 빈집을 공방으로 꾸미고 있다. [대전 공공미술연구원 제공=연합뉴스]



(대전=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성매매 집결지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청년들의 노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낡은 쪽방과 여인숙이 즐비한 대전역 바로 옆 정동에 최근 젊은 작가들의 공방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대전 공공미술연구원이 마을미술프로젝트를 시작해 빈집을 공방으로 꾸미면서부터다.

황혜진 대전 공공미술연구원 대표는 19일 이곳 대전역 주변을 '사회 문제가 집약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은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다.

성매매 여성과 포주는 물론 노인과 저소득층 등 소외 하층민이 모여 쪽방과 여인숙 등에서 산다.

길거리서 지나가는 남성들에게 성매매를 권유하는 이른바 '청객'만 50명 이상 상주한다.

청객 수로 볼 때 성매매 업소는 100곳 이상, 성매매 여성은 2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지역 여성단체는 전했다.

2017년부터 이 골목에 대전 공공미술연구원이 하나둘씩 공방을 만들면서 현재는 작가들의 공간이 10여개나 됐다.

작가들은 공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매주 두 차례 주민과 만난다.

주민과 그림일기를 쓰고 주민에게 붓글씨를 가르쳐준다.

함께 비누와 수세미를 만들어 판매도 한다.

공방을 찾는 주민 가운데는 성매매 여성, 청객과 포주도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형편이 어려운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도 공방을 찾는다.

주민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 웨딩사진을 찍어주는 특별한 경험도 선사한다.

작가들을 경계하던 주민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제는 작가들이 마을 경조사까지 챙기는 진짜 주민이 됐다고 황 대표는 전했다.

가장 큰 소득은 주민들이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황 대표는 "사회 최하계층이라 느끼는 박탈감과 자괴감 때문에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작가들이 관심을 주고 귀를 기울여주자 주민들이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껴 웃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수요일팀 주최로 열린 영화제
지난해 10월 대전 중동 성매매집결지 인근에서 수요일팀이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상영하고 있다. [수요일팀 제공=연합뉴스]



대전역 길 건너편 중동 성매매 집결지서도 지난해부터 청년들이 움직이고 있다.

20∼30대 작가와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수요일'팀이다.

팀 이름은 이 마을에 성매매가 아닌 다른 새로운 '수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성매매 집결지 한가운데서 영화제를 열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사회 한켠에 이런 어두운 곳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성매매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상영된 영화는 '박카스 할머니'를 소재로 한 '죽여주는 여자'였다.

채선인 수요일팀 대표는 "성매매 집결지에서 그들의 얘기를 담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영화 상영에 앞서 참석자들과 함께 골목길을 걸으며 동네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수요일팀은 또 마을 주민을 상대로 '수요 이동 사진관'을 열었다.

청객을 비롯해 주민의 인물 사진, 일상사진을 찍어주며 각각의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11월엔 플리마켓도 열었다.

대전여성자활지원센터서 만든 핸드메이드 상품과 페미니즘 굿즈와 잡지가 판매됐다.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Q&A도 진행했다.

채 대표는 "도시재생이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로 진행될까 우려하고 있다"며 "올해는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주는 일을 하려한다"고 말했다.

so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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