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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뉴스분석]1년전 버스 지원 약속한 정부, 지금은 "지자체 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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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3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 심의와 이틀 앞으로 다가온 버스 파업과 관련된 입장을 밝혔다. 두 사안은 그동안 고용시장을 뒤흔들어 온 현 정부의 국정과제다. 최저임금 1만원과 근로시간 단축에서 비롯된 혼란은 지금까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코드 대신 합리성 따지기 시작한 최저임금
이 장관은 최저임금 심의에 대해 "합리성과 공정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최저임금을 현행 법 체계에 따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면서다. 버스 분규에 대해선 "국토교통부, 해당 지자체와 요금현실화 등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조속히 찾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했다. 속시원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사실 두 사안은 현 정부들어 준비없이 질러댄 정책이란 비판을 받았다. 경제현실이나 고용시장에 미칠 영향은 고려되지 않았다. 공약실천에 얽매여 속전속결로 시행했다. 시행하자마자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 폐업 같은 강력한 지진을 유발하더니 초기 지진에 버금가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대로 둘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보완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금이 간 시장의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버스 분규처럼 때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방치하다 화를 자초하기도 했다.

심의 기준까지 주무른 공익위원, 전원 사퇴
올해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이 주도했다. 그들이 금액을 제안하고, 표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느닷없이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내세웠다. 이전까지는 중위임금(전체 근로자의 임금을 일렬로 늘어놨을 때 중간에 위치한 값)을 기준으로 했다. 평균임금은 수억원대 임금을 받는 사람부터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까지 모든 임금을 합산해 전체 근로자의 근무일수로 나눈 값이다. 기준점을 확 올린 셈이다. 편법논란이 인 기준 변경까지 동원한 끝에 10.9% 올렸다. 공익위원들은 지난 3월 전원 사퇴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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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최저임금위원회는 재적인원 27명 중 사용자위원과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을 재외한 14명이 근로자위원안 8680원과 공익위원안 8350원을 투표해 공익위원안을 2019년 최저임금으로 확정됐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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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아우성이었다. 최저임금 근로자가 밀집한 미숙련공과 자영업 부문이 큰 타격을 입었다. 청년은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얻기 힘들어졌다. 다급해진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을 만들었다. 정부가 직접 개입해 민간 근로자의 임금을 대주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제도다.

그래도 효과가 미심쩍자 뒤늦게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누는 이원화방안을 내놨다.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정쟁에 몰두한 정치권으로부터 외면받았다.

정부 예산, 최저임금과 연계…심의 더 못 미뤄
정부는 최저임금 심의를 더 미룰 수 없게 됐다. 결국 현행 법체계에 따라 심의를 진행키로 했다. 8월말까지 내년 예산 편성 시안을 짜야하는데, 예산의 상당부분이 최저임금과 연계돼 있어서다.

대신 이 장관은 "최저임금 결정에 공익위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만큼 전문성과 중립성을 기준으로 위촉하겠다"고 말했다. '정권 코드형' 비판을 잠재우겠다는 뜻이다. 현 정부 첫해에 위촉한 공익위원의 활동에 대한 반성이 엿보인다.

경제현실과 고용지표, 최저임금 심의 기준 활용
최저임금 심의 기준도 법 개정안에 담긴 고용영향, 경제지표 등을 선제적으로 반영토록 할 방침이다. 이념이나 성향에 따라 함부로 기준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경제 현실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토록 유도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의 이런 노력이 향후 심의 과정에 먹힐지는 미지수다. 노사간 샅바싸움 형태로 진행되는 탓에 파행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심지어 정부 정책을 둘러싼 노사간 대리전 양상으로 번질 수도 있다. 노동계는 "노동정책이 후퇴했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경영계는 "이제라도 현실을 반영한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얼마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시장 친화적 사인을 보내느냐가 내년 최저임금 심의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1년 간 손 놓고 있다 "지자체 소관" 떠넘기기
예전엔 노선버스나 방송업, 교육서비스업은 근로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았다. 이른바 특례 업종이다. 그러다 주당 최대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제외됐다. 혼란이 불가피했다. 정부가 올해 7월부터 적용하기로 1년 간 준비기간을 준 이유다.

고용부는 "7월부터 특례에서 제외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은 1051개소로 이 가운데 85.3%는 주 52시간제를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선버스나 방송업 교육서비스업은 주52시간 초과비율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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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규모의 버스파업을 이틀 앞둔 13일 서울의 한 공영차고지에 버스가 주차돼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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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요금현실화 등 노사정 합의…이제와서 "주52시간제와 관련 없다"
정부는 뭘 했을까. 지난해 5월 31일 국토부와 고용부, 버스 노사는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에 합의했다. 임금보전과 신규채용을 위한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정부가 약속했다. 부속합의서에는 '노선버스 운임체계 현실화 등 적정수입구조 확보 방안을 2018년 12월 31일까지 마련한다'고 했다. '준공영제' 확대도 들어있다.

1년 전에 정부가 이미 주52시간 시행에 따른 요금현실화와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이번 파업은 주52시간제와 관련이 없다"고 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합의서에 서명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버스 요금 책정은 지방자치단체 소관'이라고 떠넘긴다.

합의서는 이행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고용부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원을 충원할 경우 인건비(월 최대 100만원)와 임금보전비(월 최대 40만원)를 지원해주는 일자리 정책을 버스업계에 적용했을 뿐이다. 버스 노조는 결국 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버스 사태가 노사분규가 아니라 노정갈등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대학도 비상…연말 입시 사정 대란 발생할 가능성
보도·방송제작 등의 직군에서 초과 근로가 많은 방송에 대해서도 정부는 유연근로제 확대를 독려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서비스업의 초과근로는 대입 전형기(10월~이듬해 1월)에 많이 발생한다. 정부는 "탄력근로제가 확대되면 해소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회의 정쟁이 길어지면서 이마저도 불안한 상황이다. 대학은 정부의 가이드라인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사업계획조차 못 짜고 있다. 버스 사태처럼 10월쯤 대학 사정 대란이 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제도 시행한 뒤에야 해법 찾으니 혼란 발생"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최저임금제와 주52시간제와 같은 고용정책에 대해 "제도를 만들고 적용하면서 제도로 정리를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불확실한 시장 상황이 계속된다. 그 비용은 이해당사자가 떠안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제도 성립 전에 해법을 다듬고 시행해야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그런데 정부조차 제도가 탄생한 뒤 해법을 못찾아 우왕좌왕하니 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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