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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이슈 아동학대 피해와 대책

[단독] 아동학대 피해부모, 경찰서에서 CCTV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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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정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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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가명·당시 만 3세)는 어린이집을 다닌 지 석 달 만인 2018년 6월 퇴소했다. 아이의 말과 행동, 몸에 난 상처들에서 아동학대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민우의 아버지 서모씨는 퇴소 결정을 한 날 어린이집에 폐쇄회로TV(CCTV) 열람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래도 CCTV를 볼 수는 없었다. 서씨는 어린이집에 열람 요청을 한 지 12일이 지난 뒤에야 경찰이 입수한 CCTV 영상의 일부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우의 부모는 경찰에 “CCTV를 직접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수사 중인 사항이고,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열람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경찰은 처음 사건을 접수한 지 9개월이 지나서야 CCTV 영상에 나온 학대 중 11가지 행위에 대해서만 아동학대로 판단,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현재는 검찰의 수사지휘에 따라 보강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금은 경찰에 압력 넣어야 겨우 허락

문제는 아동학대 피해자의 부모가 CCTV 영상을 보고 싶어도 어린이집이 열람을 거부하면 법적으로 영상을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일부 학대 피해아동의 부모는 각 지역의 인권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압력을 넣는 방식으로 CCTV 영상을 확인하고 있는 형편이다. 민우의 부모도 지역 장애인부모연대 및 장애인인권단체 등의 도움을 받았다. 현재 지역 인권단체와 함께 경찰서장의 면담을 거친 뒤 경찰서 한편에 마련된 책상에서 CCTV를 열람하고 있다. 민우의 엄마 임모씨는 “경찰은 11건의 학대행위만 발견했는데 우리 부부가 번갈아가며 CCTV 영상을 확인하니 경찰이 찾아내지 못한 많은 학대장면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민우의 부모가 추가로 발견한 학대 정황은 아이가 서툴게 숟가락질을 하자 식판을 빼앗고 밥을 못먹게 하는 장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아이를 갑자기 낚아채 다른 방으로 혼자 격리시켜놓는 장면, 아이를 뒤로 넘어지게 한 뒤 삿대질을 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아이를 방치하고 있는 장면 등이다.

임씨는 “경찰에 ‘왜 이 장면들은 학대증거에 포함돼 있지 않냐’고 물었더니 ‘꼼꼼히 살폈고, 해당 장면은 학대가 아닌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면서 “교사가 아이를 때리는 장면인데 왜 그게 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아이가 뇌병변장애 4급 장애인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점을 원장과 교사가 알고 있었음에도 아이의 아픈 다리를 밀고 툭툭 치는 장면들이 나온다”면서 “경찰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없어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7년 부산의 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경찰·검찰은 98건의 학대행위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이때 피해아동의 부모들은 CCTV 열람을 할 수 없었다. 가해교사는 1심에서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후 해당 어린이집과 교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기 위해 부모들이 경찰에서 얻은 CCTV 영상에서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170건의 아동학대 장면을 추가로 발견할 수 있었다. 검찰은 이 가운데 110건에 대해 추가 기소했다. 부실수사였던 셈이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애초에 피해아동 부모가 경찰서 내에서 CCTV를 열람해 학대장면을 찾아낼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면 이 같은 헛발질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서울시 노원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CCTV 화면. 교사는 점심시간 뇌병변 장애가 있는 피해아동이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자 아이를 테이블에서 밀어내고 있다. (붉은 원) 화면은 해당 어린이집 CCTV 영상을 갈무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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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보호법에 따르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자는 어린이집 내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돼 있다. 또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 피해아동의 부모는 열람신청서 또는 의사소견서를 어린이집에 제출하고 열람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어린이집에서 열람을 거부당하고, 결국 경찰을 동원해야 CCTV 영상을 빼올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원장이 즉시 열람을 거부하고, 법이 정한 결정기간(10일) 이내에 또다시 어린이집 운영위원회의 열람 반대 의견을 근거로 열람을 거부할 경우 피해아동의 부모가 CCTV를 얻어낼 방법은 ‘즉시 열람권’이 있는 경찰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렵게 영상을 확보해도 피해아동의 부모는 경찰서에서조차 CCTV 열람이 불가능하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경찰이 수거해 간 어린이집 CCTV는 ‘범죄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확보한 영상’에 해당해 수사관이 범죄혐의 확인을 위한 목적 외 다른 목적(피해아동 부모에게 열람하도록 하는 것)으로 사용할 경우 개인정보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일선 경찰서에서는 CCTV 열람을 둘러싸고 피해아동의 부모와 갈등을 빚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 제한적 허용 지침 내릴 예정

한 여성청소년계 소속 경찰관은 “아동학대 피해 부모가 ‘○○경찰서는 CCTV를 자유롭게 보여주고 촬영도 할 수 있게 했다는데 왜 여기는 안 보여주느냐’며 청문감사관실에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원칙은 보여주지 않는 것이지만 경찰서마다 기준이 없다보니 항의가 들어오면 이미 검토한 영상만 일부 보여주는 등의 임시방편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 같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아동의 보호자가 경찰서 내에서 CCTV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매뉴얼을 제작, 이르면 5월 셋째 주에 일선서에 배포할 계획이라고 5월 9일 밝혔다.

경찰청은 우선 일선 경찰서에서 확보한 어린이집 CCTV는 원칙적으로 비공개 정보로 분류하되 피해아동의 부모가 ‘정보공개요청서’를 작성해 제출할 경우 경찰서 내 제한된 장소에서 열람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CCTV 영상은 법적으로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경찰서 내에서만 열람이 가능하며, 열람 시에는 경찰을 배석시킨다는 계획이다.

또 경찰청은 아동전문보호기관과 해당 영상을 함께 또는 교차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경찰이 미처 아동학대로 판단하지 못했거나 놓칠 수 있는 장면까지도 이중으로 체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CCTV에 나오는 다른 아이들의 보호자에게 열람동의서를 받은 뒤 피해아동의 부모에게 영상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제한적 허용이 가능하도록 일선서에 지침을 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는 일정 요건을 갖추면 CCTV 영상을 공개하겠다는 것이지만 실효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어린이집 원장이 부모들을 선동해 열람동의서에 서명하지 않도록 할 경우 피해아동의 부모가 CCTV를 열람할 방법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공혜정 대표는 “2018년 7월 강서구 화곡동에서 발생한 11개월 아동 질식사 사건의 경우에도 어린이집 원장이 ‘그건 사고였다’면서 다른 아동의 부모들로부터 합의서를 받으러 다녔고, 실제 학대피해가 없는 일부 부모들은 합의서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면서 “경찰은 해당 학대의심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들의 부모들이 당연히 열람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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