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16일 오후 제주항 국제여객선터미널 광장에서 제주도교육청 주관으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사고 생존자이자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리는 김동수씨가 고개를 숙여 흐느끼고 있다. /사진=뉴시스 |
"자기네 이익 챙기려고 우왕좌왕하는 국회를 보니 5년 전 세월호 참사 때가 떠올랐다."
세월호 침몰 당시 소방호스를 자신의 몸에 감고 학생 20여명을 구조해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린 김동수씨(55)는 3일 머니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국회가 빨리 자리잡고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9시12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외곽 2문 앞 인도에서 자해를 시도한 뒤 현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김씨는 "5년 전 참사 때 해경과 해양수산부 등이 우왕좌왕하고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304명이 죽고 많은 국민이 고통받았다"며 "그때와 다르지 않은 지금 국회 모습을 보니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고 자해 이유를 밝혔다.
제주도에 살고있는 김씨는 국회 앞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날 아침 첫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국회가 싸움을 멈추고 정상으로 돌아와서 더 이상 피해보는 국민이 없도록, 아파하는 국민을 살려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김씨는 PTSD 치료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누구 하나 나서서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를 치료해준다고 하지 않았다"며 "어디서 어떻게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지원이 없어 직접 병원을 알아보고 치료받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4년넘게 받아온 정신과 치료가 되레 상처만 남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4년이면 완치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완치는커녕 증상이 악화될 뿐"이라며 "약은 면역이 생겨서 효과도 거의 없는데 몸은 힘들고 항상 몽롱한 상태로 생활해야 하니 정상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2017년부터 부인 김형숙씨와 함께 사려니숲길 지킴이로 근무 중인 그는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만 보면 도망다니기 바쁘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씨는 "배에 물이 차오르니까 학생들이 '아저씨 좀만 기다려주세요'라며 구조 요청을 하던 모습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떠오른다"며 "마음이 고통스러워서 일부러 몸을 움직이고 돌아다니면서 이겨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김씨는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참사의 생존자다. 사고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활동을 해 '파란바지의 의인'으로 불렸다. 2015년 6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의상자로 인정받았다. 올해 1월엔 행정안전부로부터 국민추천포상을 받았다.
참사 이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김씨가 자해를 시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15년 3월 19일 자택에서 첫 번째 자해시도를 한 후 같은 해 12월14일 서울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때 방청석에 앉아 있다가 "솔직히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억울합니다"라고 말한 뒤 자해를 시도했다.
2016년 제주도청 앞에서 "세월호 진상도 밝히지 못하고 사람들의 고통도 치유하지 못하는 이 나라가 싫다"며 자해를 시도했다. 지난해 7월13일에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자해를 시도했다.
이영민 기자 lets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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